가난·질병·문맹 ‘3적’… 싸움의 기술을 가르친다

입력 2010-02-10 18:29


‘나눔’의 교수들은 전공 분야와 관련한 봉사활동으로 세계 각지에 나눔을 실천한다. 가난한 곳을 향해 뻗은 나눔의 손길은 새로운 학문적 성취로 이어졌다. 이들은 봉사활동이 행복뿐 아니라 새로운 연구 소재도 제공해줬다고 입을 모았다.

‘나눔의 꿈’ 키워가는 서울대 교수들

◇교육학과 김기석 교수는 ‘국경 없는 교육가회(EWB·Educators Without Borders)’의 공동대표를 맡아 활동하면서 세계 각지의 빈곤국에 한국의 교육 이론을 소개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7월 석?박사 과정 제자들과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 다녀왔다. 교육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룬 한국의 경험을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서부 아프리카 내륙의 작은 나라인 부르키나파소는 소득 수준이 낮았고 에이즈도 창궐했다. 김 교수는 그 나라를 둘러싼 질병과 빈곤 문제가 문맹에서 온다고 진단했다. 부르키나파소의 문맹률은 80%에 달했다. 김 교수는 제자들과 공용어인 불어를 가르치는 교육센터를 설립했다.

김 교수는 젊은 농민들을 중심으로 문맹자 교육, 질병예방 교육, 직업기능 훈련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교육을 진행했다. EWB 동료들과 부르키나파소의 문맹 문제를 세계의 교육 전문가들에게 알리는 글로벌 네트워크도 만들었다.

김 교수와 제자들의 노력 덕분에 부르키나파소를 빈곤국에 머물게 하던 ‘무지→질병→빈곤’의 악순환은 서서히 ‘문맹퇴치→질병예방→소득증대’의 선순환으로 변했다. 현지의 반응은 뜨거웠다. 주민들은 한국의 교육가들이 먼 아프리카에 교육센터를 만들고 교육의 중요성을 알리는 모습에 감동했다.

김 교수의 교육 철학은 “물고기를 주는 대신 물고기를 잡는 능력을 길러주자”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올해 부르키나파소 교육부 장관의 요청으로 초등교육 교과서 제작에 나선다. EWB와 함께 빈민들의 경제 자립을 돕기 위해 개인당 10만원의 소액 융자를 제공하고 자녀들에게 1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할 계획도 세웠다.

◇의과대학 안규리 교수는 의료봉사활동으로 나눔을 실천한다. 안 교수가 주축이 된 서울대 의료봉사 모임 ‘라파엘클리닉’은 1997년부터 매주 일요일 서울 혜화동 동성고교에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무료 진료를 해 준다. 14년 동안 의료 혜택을 받은 외국인 노동자는 12만명에 이른다.

안 교수는 몽골 지역에서도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라파엘클리닉은 2007년부터 1년에 두 차례 몽골의 도시 빈민가인 항올 지역에서 무료 의료 캠프를 열고 있다. 지난해에는 4∼5월과 9∼10월에 캠프를 열고 당뇨, 결핵, 간염, 성병 등을 치료했다. 안 교수는 캠프에서 만난 심장병 어린이를 서울대병원으로 초청해 김웅한 고재성 교수로부터 수술을 받게 했다.

봉사활동은 외국인 질병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게 해 줬다. 일방적 원조에 머무르지 않는 안 교수의 의료 캠프는 교육 사업도 잊지 않았다. 안 교수는 의료 캠프가 열릴 때마다 유치원과 학교 4곳의 몽골 어린이 4000여명에게 기생충 예방 교육을 했다. 2008년부터는 올바른 이 닦기 교육도 실시했다.

안 교수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다음에 방문했을 때 다시 병들어 있으면 소용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안 교수는 의료봉사활동의 마지막 단계로 몽골 솔롱고스 지역에 의료교육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곳에서 안 교수는 몽골 시립병원, 국립의대와 함께 의료 지원 방향을 다듬어갈 계획이다.

◇인류학과 전경수 교수는 지난해 12월 26일부터 지난달 26일까지 인도네시아 파푸아 지역 비악(Biak) 섬 소르(Sor) 마을에서 소수 민족인 비악족(族)에 대한 문화 연구를 진행했다. 전 교수는 단순히 현지 실상을 조사한 것이 아니라 원주민들과 먹고 자며 삶을 공유했다.

현지인의 생활 속에 파고들어 연구를 수행하던 전 교수는 비악어(語)가 사라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자마자 인도네시아에 속한 비악 섬에서는 비악족만의 토착 언어가 급격히 사라지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인도네시아어만 썼고, 일부 노인들만 비악어를 쓸 줄 알았다.

전 교수는 사라지는 비악어와 비악 문화를 되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수 민족의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소수 민족의 문화유산 모두가 소멸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비악어 사전을 만들고 비악어를 통한 문화유산 채록 작업을 벌였다.

전 교수는 비악어 사전 편찬을 위해 컴퓨터를 기증하고 현지 작업자를 선정, 작업에 착수했다. 신약성경만 비악어로 쓰여 있다는 점에 주목해 비약어 구약성경 편찬에도 나섰다. 소르 지역의 에벤에젤교회와 협력해 출판을 지원하기로 했다.

전 교수는 비악 지역의 문화 지키기 운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전 교수는 발굴한 토착 지혜를 의미 있는 연구 결과로 만들기 위해 비악 섬과 서울대를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비악 섬에 ‘당지학교(Field School)’를 세워 인류학 연구의 중심지로 만든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올해 말 비악 섬에 학교를 세우고 서울대 인류학 전공 학생들이 현지 문화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