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페일린에 ‘손바닥 펀치’… 기브스 대변인 “적어왔다” 손바닥 커닝 패러디
입력 2010-02-10 21:20
미 백악관이 공개석상에 나서기만 하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독설을 퍼붓는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에게 멋지게 한방을 먹였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9일 오후(현지시간) 정례브리핑을 시작하고 몇 마디 답변을 하다가 갑자기 기자들에게 왼손바닥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몇 가지 좀 적어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손바닥에는 ‘계란, 우유, 빵, 희망, 변화’라는 휘갈겨 쓴 단어가 적혀 있었다.
순간 브리핑장은 기자들의 폭소로 가득 찼다. 누가 봐도 지난 6일 내슈빌의 보수단체 ‘티파티(Tea Party)’ 집회에 참석했던 페일린을 패러디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당시 페일린은 손바닥에 검은색으로 쓴 ‘에너지, 세금 감면, 미국정신 고양’ 등 3가지 단어를 슬쩍 들여다보며 대화를 이끌어갔다. 대담 도중 잊어버릴 것을 염려해 일종의 ‘손바닥 커닝페이퍼’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장면은 TV카메라에 포착됐고,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퍼지면서 일부 사람들이 페일린의 지적 능력을 거론하며 조롱하기도 했다. 기브스 대변인이 이를 흉내 내며 페일린을 은근히 깎아내린 것이다. 그가 적은 단어는 워싱턴의 기록적인 폭설로 각 가정이 준비해야 할 것들이다.
브리핑 시작 직전에 오바마 대통령이 예고 없이 들러 초당적 협력에 관한 여야 지도부와의 오전 회동 결과를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기자들이 “오바마 대통령이 초당적 협력을 위해 공화당이 요구하는 건강보험법안 철회 같은 것을 할 수 있느냐”고 신중하게 물었다. 그때 기브스 대변인이 느닷없이 “내가 까먹을까 봐 몇 가지 적어왔다”면서 손바닥 메모로 페일린을 풍자한 것이다.
기브스는 특히 페일린이 손바닥에 애초 ‘예산 감면’이라고 썼다가 ‘예산’을 지우고 ‘세금’이라고 고쳐 쓴 것까지 그대로 흉내 냈다. 자신의 손바닥 메모에 ‘빵’이라는 단어에 ‘×’ 표시를 한 것이다.
페일린은 공개석상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뛰어난 연설솜씨에 대해 ‘텔레프롬프터(연설 원고를 읽을 수 있는 장치)를 이용해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인물’이라고 자주 비판했었다. 그는 티파티 집회에서도 오바마가 거대한 정부, 막대한 지출을 일삼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의 정책이 시의적절하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기브스 대변인의 익살스런 페일린 풍자는 눈 내린 워싱턴의 ‘대박상품’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