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상온] ‘죄 많은 나라’의 국격 타령

입력 2010-02-10 18:10


“국격 강조하더라도 GDP처럼 목표 설정하고 추진하는 아둔한 짓 말아야”

나라를 사람에 빗댄 국격(國格)이란 말이 얼마 전부터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사용빈도가 가장 높은 단어 중 하나가 돼 버렸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것은 물론 합의된 개념 정의조차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아마도 G20 정상회의 유치를 계기로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올해를 국격 상승의 해로 규정한다고 밝힌 게 기폭제로 작용했겠거니와 거의 모든 일이 ‘국격 제고’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가령 며칠 전 해군 사상 최초로 원양작전을 펼칠 수 있는 기동전단이 출범했을 때 국격 향상을 위한 쾌거라는 평이 나왔다. 국력과 국격을 혼동한 감은 있지만 일단 그렇다 치자. 아이티 지진 같은 해외 재난 구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국격 제고와 연계시키는 데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민주당이 당내 이유로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징계하자 한나라당이 이를 ‘국격 손상행위’라고 공박한 것은 어떤가. 또 미국판 대학수능시험인 SAT 문제지가 유출된 것을 놓고 국격을 떨어뜨리는 짓이라고 청와대 참모들이 말한 것은. 그런가 하면 업무상 영어를 필요로 하는 일부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며 국격 제고를 이유로 든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은. 이쯤 되면 가히 ‘국격 타령’ 아닌가.

사회 일각에서는 국격을 폄하하는 주장도 나온다. 개인을 단순한 국가의 일부, 하나의 부속으로 보는 국가주의에 세련된 옷을 입힌 게 바로 국격이라는 것. 그런 측면도 없지 않지만 이 역시 지나치면 국가에 대한 개인의 가치에만 초점을 맞추는 개인주의에 매몰될 우려가 있다. 이에 비추어 과도한 느낌은 있지만 국력과 국가 이미지, 대외 인지도(또는 신인도) 등을 모두 포괄한 의미에서 국격을 강조하는 것은 무조건 매도할 일만은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 초를 치는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한국(인)의 도덕 수준이 세계에서도 최하위 10개국에 포함될 만큼 낮다는 것. 영국 BBC가 발행하는 대중 과학 잡지 포커스 2월호에 따르면 이른바 ‘7대 죄악(the Seven Deadly Sins)’, 곧 정욕(Lust) 탐식(Glutony) 탐욕(Greed) 나태(Sloth) 분노(Wrath) 시기(Envy) 교만(Pride)을 현대적 척도로 분석해 종합한 결과 한국은 세계에서 8번째로 ‘죄 많은 나라(most sinful nation)’로 꼽혔다.

특히 정욕, 노골적으로 말해 성적 욕구는 한국인이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악의 난장판 국회 등에 이어 반갑지 않은 세계 1위 타이틀이 하나 더 보태진 것.

물론 일개 잡지의 자의적인 분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자괴감에 빠질 필요는 없다. 우선 조사 대상 국가가 전 세계 200여개 가운데 35개국(그나마 그중엔 무슨 이유에선지 세이셸이나 몬세라트 같은 초미니 섬나라들도 끼어 있다)에 불과하다. 게다가 분석 기준도 선뜻 수긍할 정도는 아니다.

이를테면 정욕의 경우 기준은 국민 한 사람이 포르노물에 지출한 연간 비용이고, 탐식은 패스트푸드에 쓴 국민 1인당 지출액이다. 또 탐욕은 연간 소득이 평균치의 50%에 못 미치는 저소득층의 비율, 나태는 봉급생활자 1000명당 연간 총 결근일수, 시기는 가택침입 절도와 강도 등의 발생률, 분노는 살인과 성폭행 등 강력범죄 발생률, 교만은 특정 국가 국민으로서의 만족도와 국민 1인당 성형수술 건수를 기준으로 계산했다. 허점이 눈에 보인다.

그렇다 해도 ‘세계 8위의 죄 많은 나라’ ‘세계 최고 포르노 소비국’이 국격 타령을 한다면 그건 좀 우스꽝스럽지 않을까. 적어도 포커스의 기사를 본 독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국격 상승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 의식수준 또는 민도(民度) 향상이 선결조건이 돼야 할 듯싶다. 특히 국격이 국민 각자 인격의 총합이라는 지적이 옳다면. 아울러 국격 제고를 추진하더라도 마치 국민총생산 설정하듯 언제가 국격 상승 원년이고 목표 연도는 언제라는 식의 아둔한 접근도 지양했으면 좋겠다.

김상온 카피리더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