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재중] 또 하나의 판도라
입력 2010-02-10 23:11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정되는 듯 하더니 이번에는 재정위기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최근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아일랜드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의 재정이 악화되고 국가채무가 급증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이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재정위기의 시한폭탄을 돌리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나라 재정건전성과 국가채무의 적정성에 대한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정부는 국가채무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366조원에 불과하다고 밝혔지만 공기업·공적금융기관 부채까지 합칠 경우 700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는 국민 1인당 1500만원에 가까운 금액이다. 국가채무는 그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크게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실관계에 기초해 국가채무를 산정하되 현재의 위험성뿐만 아니라 미래의 불확실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포된 위기를 지나치게 부풀려서도 안 되지만 현재 시점에 안주해서도 곤란하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9일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많이 나왔다”며 “그런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근거 없는 낙관도 경계해야 하지만 사실 이상의 비관이나 걱정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재정수지와 국가채무는 양호한 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및 국가부채는 -2.7%와 35.6%로, 문제가 되고 있는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6.9%와 73%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한 나라의 재정상태를 평가하는 기준에는 통합재정수지와 관리대상수지가 있다. 통합재정수지는 일반회계와 특별회계 및 34개 공공기금 등으로 구성된다. 관리대상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을 뺀 것이다. 통합재정수지보다 더 보수적인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관리대상수지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실제로 국제 신용평가사 S&P도 올해 1월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을 강점으로 평가했다. 윤 장관은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 슈퍼추경도 재정건전성이 좋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국제통화기금(IMF)도 재정건전성을 보려면 한국을 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국가채무도 IMF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준에 따르면 공기업·공적금융기관 등의 채무는 포함되지 않는다.
공기업 부채는 시장성 있는 공기업이 정부와 독립적인 경영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채로 보기 때문이다. 공적 금융기관도 금융 공기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설령 공기업을 국가채무 대상에 포함시킨다고 하더라도 부채만 늘어나는게 아니라 자산도 함께 증가하기 때문에 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고 정부는 설명한다. 즉 대응자산이 있어 상환이 가능한 금융성 채무가 순수한 부채인 적자성 채무보다 많다는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탄탄한 재정상태를 보이고 있어 재정위기에 처한 유럽 국가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줄어 세수는 감소하는 반면 복지 예산 등으로 지출 요인은 늘고 있다. 통일 비용도 큰 부담이다.
공기업 부채도 국제기준으로 국가채무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영역이어서 향후 부실화될 경우 잠재적인 국가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들이 호화청사에 쏟아 붓는 비용도 결국은 국가채무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 채무가 많다거나 급증했다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정부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물론 잘못된 보도내용은 적절한 해명을 통해 바로잡아야겠지만 앞으로 악화될 가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겸허하게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재정적자나 국가채무를 사실보다 부풀려 대외신인도를 스스로 떨어뜨려서는 안 되지만 항상 경계하고 미리 대비하는 자세는 필요하다. 유럽 국가들의 위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김재중 경제부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