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신의 깜짝 한수] GS칼텍스배 본선24강 ● 김성룡 9단 ○ 유재호 3단
입력 2010-02-10 17:46
대형 서점에 들러 책 구경을 하고 있다. 서점은 약속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있다거나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하기에 적절한 곳이다. 오랜만에 서점에서 이곳저곳 코너를 기웃거리다 보니 역시 요즘의 대세는 처세술과 경제란 것을 알겠다. 말하기에 극도로 공포증을 느끼는 필자는 말 잘하는 법에 관련된 책을 찾아 한 바퀴 돌다 수많은 책들이 대중처럼 느껴져 또다시 공포감이 밀려와 뒷걸음치기 시작한다. 아, 이렇게 또 한 번 말하기에 대한 의지는 사그라지는구나!
‘수담 (手談)’으로 불리는 바둑은 직역하면 손으로 하는 이야기다. ‘구음(口音)’을 통해 전해지는 토속음악처럼 소리로 만드는 것과는 달리, 두 사람이 손과 머리로 바둑판 위에 만들어 내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전문분야에 속해 있는 사람은 어린 나이부터 시작해 습득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성격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도 볼 수 있다”라고 쓰면 현재의 성격에 대한 변(辨)이 될 런지.
서론이 길었다. 오늘 소개할 대국자의 이름을 보는 순간 이러쿵저러쿵 수많은 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김성룡 9단 이름을 들으면 웬만큼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은 ‘바둑계의 김구라’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이 오랜만에 본선무대에 올라와 바둑을 놓아보니 역시 자유자재한 그의 말솜씨처럼 바둑 역시 자유롭다.
상대는 입단하자마자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줬지만 최근엔 다소 주춤한 듯한(이런 섣부른 판단은 선호하지 않지만) 유재호 3단. 흑은 한 때 ‘빨대’라는 별명답게 초반부터 실리를 취하며 접전은 공중으로 옮겨간다. 중앙 타개를 어떤 식으로 하려나 해서 다음 수를 보니 흑1! 아…, 부분적으론 악수라 쉽게 떠오르지 않는 발상인데, 계산에 능한 김 9단, 이 악수의 값어치보다 실전처럼 흑3을 선수해 중앙 백 넉 점을 잡으며 안정을 취하는 것이 득이라고 판단하며 결정한 것이 좋았다.
흑5의 끊는 수가 선수여서 7까지 중앙을 제압해서 흑이 초반부터 우위에 올랐다. 참고도처럼 흑1의 쌍립을 먼저 두게 되면 우상귀의 백돌을 가볍게 보고 백2의 중앙으로 뛰어나가 백8의 한 점을 움직여 어지러운 바둑이 된다. 이 후 마무리까지 역시 실전적인 수를 보여주며 흑 한집 반 승.
그의 바둑은 미학(美學) 이라는 개념에서 보면 썩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실적인 것이나 이기는 것이 아름다움의 기준이라고 본다면 그의 바둑은 실전적인 미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프로 4단>
<프로 4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