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아프리카 르네상스’

입력 2010-02-09 19:00

남북 청소년들이 그제 서울 프레스센터에 모여 북한 인권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 자리에서 한 탈북 여학생은 하루에 한 끼 먹는 것을 고맙게 여길 정도로 식량난이 극심했던 1996년 북한 정권은 김일성 유해를 안치한 금수산기념궁전을 단장하는 데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 학생의 전언대로 주민들이 굶어죽든 말든 북한 정권의 우상화 작업은 그칠 줄 모른다.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7월 이후 3년간 주석궁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개조하는 데 2억 달러를 썼다고 한다. 김일성 생존 시 평양 만수대에 높이 20m의 동상을 세운 것을 비롯해 70여개의 동상과 승전기념탑 등을 만들었고, 사후에도 지방 곳곳에 김일성 조형물을 세우는 중이다.

노동당 중앙위 직속의 만수대창작사가 이 일을 담당한다. 천리마동상과 주체사상탑, 개선문도 이 단체 작품들이다. 수십 년간 북한 주민들의 등골을 빠지게 한 결과일까. 만수대창작사는 대형 조형물이나 건물을 건축하는 데 남다른 실력을 갖추게 됐다.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해외에 진출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으니 북한으로서는 수출효자산업인 셈이다.

주 타깃은 아프리카 후진국들이다. 내정이 불안한 아프리카 국가들과 수교를 맺거나 무기를 지원하며 관계를 돈독히 해왔고, 싼 인건비가 북한의 강점이다. 나미비아, 앙골라, 보츠와나 등에 이미 대형 건축물이나 동상을 수출했다.

어제 주요 일간지에 세네갈 다카르 국제공항 인근의 대서양 연안에 세워지고 있는 50m 높이의 ‘아프리카 르네상스’라는 초대형 조형물 사진이 실렸다. 구릿빛 피부의 한 남성이 한 손으로 아기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여성의 허리를 감싼 채 대서양과 하늘을 응시하는 형상이다. 오는 4월 4월 세네갈 독립 50주년 때 완공될 이 조형물 역시 만수대창작사가 주도하고 있다.

‘아프리카 르네상스’는 500년의 노예 역사와 200년의 식민 역사를 갖고 있는 아프리카가 자유와 독립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상징한다고 세네갈의 압둘라이 와드 대통령은 말했다. 이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그러나 세네갈 국민 절반 정도가 일자리가 없을 정도로 경제난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목돈을 들여 대형 조형물을 건립하고 있는 점은 북한을 연상시킨다. 북한 정권처럼 전체주의를 지향하려는 의도가 조형물에 담겨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북한이 ‘독립’은 몰라도 ‘자유’를 향한 조형물을 만든다는 것은 아이로니컬하다. 달러가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