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씨’를 담으려 그녀 심장은 다시 뛰었다… 심장병 사투 김포제일교회 손태숙 사모 그림展

입력 2010-02-09 18:54


죽음은 몇 해 전부터 그의 심장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몸이 아프고 나서 그는 그림을 그렸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육신의 고통 속에 그려진 그림은 어쩔 수 없이 고독하고 적막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향한 동경과 연민 역시 진하게 배어 있었다. 그림 한 점 한 점마다 영혼의 눈물을 담으려 했다고 그는 말했다.

경기도 김포제일교회 김동청 목사의 부인, 손태숙(47) 사모. 그는 2007년 여름 난데없는 병마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몸통 전체를 찢어 놓을 듯한 고통으로 몇 차례 응급실에 실려 간 끝에 받은 진단은 스트레스성 심근경색이었다.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오른쪽 허벅지 혈관을 통해 심장에 스탠트(혈관확장 철망)를 심는 시술을 했다. 어린 아이의 것 같이 가늘고 약한 혈관이 문제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뭔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혈관이 터지고 코, 눈, 귀 등에서 뜨거운 물이 나왔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 사모는 “주님, 너무 아파요. 빨리 저를 데려가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심장 박동이 멈추고, 전기충격기까지 동원된 밤샘 사투 끝에 그는 생명을 건졌다. 얼마 뒤 퇴원을 했지만 피부는 늙은 나무껍질처럼 거무튀튀했고, 복부는 만삭의 임신부처럼 부어올라 반 년 가까이 꺼지지 않았다. 이후 2008년 4월과 지난해 9월 두 차례 쇼크가 왔고, 손 사모는 그 때마다 병원 수술대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그림은 첫 번째 수술 이후 그리기 시작했다. 안정을 위해 그림을 그리거나 동물을 키워 보라는 의사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6월 손 사모는 소강석(새에덴교회) 목사에게 그의 시집 ‘꽃씨’를 선물 받았다. 처음에는 대충 훑어보고 ‘괜찮네’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9월, 병원에서 퇴원한 뒤 읽은 시는 전과 달랐다. “그 전의 정서적 교감이 영적 교감으로 바뀌었다”고 손 사모는 표현했다.

‘…이 세상을 떠나는 날/나는 이 꽃씨들을 천국에 가져가렵니다.’ 그날 그는 방바닥에 엎드려 주님을 부르며 새벽까지 울었다. 그리고 시를 화폭에 옮기기 시작했다. 시를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며 하루 10시간 이상씩 그림에 매달렸다. 그렇게 소 목사의 시는 ‘창가에서’ ‘멍에’ ‘눈물’ ‘추목’ ‘꽃씨’ 등 제목의 그림으로 재탄생했다.

손 사모는 ‘꽃씨’ 그림을 특별히 좋아한다. 바탕 그림부터 완성까지 4개월이 걸렸는데, 마지막에는 28시간을 들여 정확히 1000개의 꽃씨를 화폭에 그려 넣었다. ‘이 꽃씨들이 우리 교회 성도들이다. 내가 하늘나라에 가더라도 이 꽃씨들이 꽃으로 피어 세상을 덮을 수 있기를…’하는바람이었다고 한다.

손 사모의 그림은 지난 1∼3일 김포제일교회, 6∼7일 새에덴교회에 전시됐다. 다음달 15일부터 일주일간 김포시민회관에서 개인전도 열린다. 수익금은 전액 아이티 구호 성금으로 쓸 계획이다. 김포제일교회에 그림이 전시됐을 때는 소 목사를 초청해 부흥회도 열었다. “1000개의 꽃씨를 그린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평소의 배가 넘는 1000여명씩이 참석했다”며 김 목사가 웃었다.

지난 7일 김포제일교회에서 만난 손 사모는 표정이 밝았다. 영적으로 맑아지면서 몸도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몸이다. 죽음은 언제든 각오하고 있지만, 사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 미안하다고 했다.

손 사모는 이제 글을 쓰려 한다. 글을 쓰고 거기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린 뒤 책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전도지로 나눠 줄 계획이다.

“더 많은 걸 내려놓으라고, 바보처럼 살라고 하나님이 큰 병을 주셨어요. 이제 주님 부르실 때까지 꽃씨를 뿌리듯 믿음을 뿌리며 지내고 싶습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