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피플-김중겸 현대건설 사장] “인문학이 건설 미래 좌우”

입력 2010-02-09 18:39


“심리·철학 전공자도 뽑아”

1976년 초. 꿈이 대학교수였던 스물여섯 청년은 친구 성화에 들러리로 건설회사 입사 시험을 봤다. 둘 다 시험에 합격했다. 친구는 몇 년 뒤 회사를 옮겼고 청년은 남았다. 34년 뒤. 그의 명함에는 ‘사장’ 직함이 새겨져 있었다.



‘건설종가’로 불리는 현대건설 김중겸(60) 사장 이야기다. 그가 이끄는 현대건설은 요즘 동종 업계에서 ‘실적제조기’로 불린다. 지난해에는 업계 최초로 매출 9조원, 순이익 4558억원을 달성했다. 회사채 신용등급은 ‘AA-’로 업계 최고다. 올해는 ‘매출 10조원, 총 수주 20조원 이상’이라는 사상 최대 목표를 제시했다. 2015년까지 ‘글로벌 톱 20위’에 진입한다는 청사진도 최근 공개했다.

최초·최고·최대의 자리에 선 최고경영자(CEO)의 시선은 이제 어디를 향해 있을까. 9일 오후 서울 계동 현대건설 사옥 8층 접견실. 아내가 골라준 주황색 체크무늬 넥타이를 매고 나타난 김 사장은 해외건설협회 관계자와 막 점심식사를 끝낸 뒤였다.

자연스럽게 해외사업 얘기가 화제에 올랐다. 현대건설은 올해 해외에서만 120억 달러(약 14조원) 이상 수주하겠다고 공언했다. “국내 건설시장은 성장이 정체된 상태입니다. 이 시점에서 남이 할 수 있는 일보다는 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일, 좀 남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데 그 시장이 해외라고 판단한거죠.”

구체적인 설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해외에서 단순히 시공만 잘해서는 경쟁력이 없어요. 디자인 엔지니어링, 설계, 구매,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등 전 분야에 능통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디벨로퍼(개발자)였다면 이제는 프로듀서(연출가) 역할까지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 그것도 다국적 사람들과 함께.” 지난해 10월 유럽 선진국에서 활동하는 기업 12곳을 둘러보면서, 또 지난해 12월 성사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주 과정에 참여하면서 절실히 깨달은 바다.

김 사장은 인문학을 통한 ‘지식경영’을 강조했다. “지금 우리가 따낸 해외 사업장에 가보면 한국인은 5%밖에 안 됩니다. 다민족·다종교·다문화를 지닌 다국적 인재들이 넘쳐납니다. 이들을 전부 아우르는 포용성과 수용성, 유연성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런 덕목을 갖추려면 공학이나 경영학 정도로는 역부족입니다. 사회 역사 철학 심리학 같은 인문학이 소통의 도구가 되어야 해요.”

이번 현대건설 신입사원 168명 중 10% 정도가 인문학 전공자로 채워졌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10배가 넘는다. 철학 심리학 사회학 전공자 외에 공예 및 조각 전공자까지 포함됐다. ‘인문학의 힘’을 강조한 김 사장의 의지가 적극 반영된 것이다.

김 사장이 최근 들어 ‘생산성’보다는 ‘가동률’이란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 것도 지식경영과 맥이 닿는다. “경영성과를 얘기할 때 종전에는 ‘몇%의 생산성을 내야 한다’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가동률 80%에 휴식이나 자기계발 20%를 유지한다’는 식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미래를 위한 재투자를 고려한 개념이죠.”

그는 다양성과 소통, 자기계발을 중시하는 인식의 전환이 비단 건설 분야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점점 더 요구되는 가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회갑을 맞은 김 사장은 2번 정도 삶의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 시골(경북 상주)에서 중학교를 마칠 무렵 “여기보다는 더 넓은 곳에서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부모 권유로 1년 더 공부해 서울로 유학온 일. 또 하나는 “중겸아, 너는 눈물도 많고 마음도 여리고 하니 해병대에 가서 마음을 단련하라”는 아버지 권유로 대학 4학년 때 해병대에 자원입대(247기)했던 일이다.

모두 망설임 없이 미지의 세계에 투신했던 경험이 오늘의 자신을 만든 큰 물줄기였다고 했다. 이제 바다 건너 더 넓은 해외시장에 초점을 맞춘 그는 또 하나의 전환점을 준비 중이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