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사정’ 없는 증인 불출석 과태료

입력 2010-02-09 18:02

A씨 “회사일 때문에 출석 못했는데 부과… 억울”

법원 “공법상 의무”


회사원 A씨는 법원이 부과한 과태료를 생각하면 부아가 치민다. 법원으로부터 증인출석요구를 받고나서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 출석하기 어렵다”는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했는데도 법원이 과태료 30만원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A씨는 대법원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너무 억울하다. 집에서 노는 것도 아니고 직장인으로서 법정출석에 어려움이 있어 사유서까지 냈는데 무슨 근거로 증인이 돈까지 물어야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대법원은 “재판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증인의 증언이 매우 중요하다”며 “대한민국 국민은 증인 의무가 있으며, 이는 공정한 판결을 위해 국민에게 부여된 공법상의 의무”라고 답변했다. 개인 사정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재판에 증인으로 나설 의무는 다해야 한다는 취지다.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재판장은 증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증인불출석으로 소송이 지연돼 발생한 소송비용과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증인에게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억울하다고 생각할 경우 과태료 결정에 즉시항고해 정식 재판에서 과태료 부과의 정당성을 따질 수 있다.

‘정당한 사유’는 명문화된 규정 없이 재판부의 판단에 달려있지만 A씨처럼 “회사에 급한 일이 있다”는 사유는 정당하다고 인정되기 어렵다. 일선 판사들은 해외 또는 장기간 타 지역 출장과 가족이 상을 당했을 경우 등 부득이하게 재판에 나올 수 없는 경우만을 인정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9일 “증인이 회사 사정으로 출석하기 어렵다고 하면 보통 출석할 수 있는 다음 기일을 지정한다”며 “다음 기일에도 회사 사정을 대며 나오지 않으면 출석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말했다.

지방에 거주해 법원 소재지까지 나오기 어렵다는 이유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법원은 법정에 나오는 증인을 위해 일당 4만원을 지급하고 상황에 따라 교통비, 숙식비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회사일이 밀려 도저히 법정에 나설 수 없을 것 같아도 출석요구를 무작정 거부하면 과태료에 그치지 않고 유치장 신세까지 질 수 있다. 현행법은 과태료 처분을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다시 출석하지 않으면 법원의 결정으로 7일 이내의 감치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1심에서 증인 출석 요구를 거부해 과태료 결정을 받은 사람은 17명에 불과하다.

대법원 관계자는 “과태료 처분을 받은 뒤 다음 기일에 출석하면 이전 처분을 취소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