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안순권] 유럽 재정위기의 교훈
입력 2010-02-09 18:12
세계금융시장이 그리스 발 국가부도 위험으로 요동치고 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지난해 2월 동유럽 금융위기와 11월 두바이의 채무불이행 선언에 이어 세 번째 충격이다. 금융위기가 큰 고비는 넘겼으나 여전히 진행형임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리스 외에도 포르투갈, 스페인이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위험한 수준이며 이탈리아와 아일랜드도 불똥이 튈 수 있는 취약한 국가들이다. 동유럽 국가들도 위기가 재발할 수 있고 유럽금융시장의 핵심국인 영국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도 위험하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이들 국가의 재정이 악화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한 후유증 탓이다. 금융에서 터진 것을 무리해서 재정으로 막으려다 상대적으로 재정여건이 취약한 남유럽 국가들이 국가부도의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위기 확산가능성 높지않아
그러나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확산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너무 우려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리스의 국가부도를 프랑스·독일 등 유로 회원국들이 방관치 않고 지원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의 재정위기는 빠른 시일 내 해결책을 찾기 어려워 글로벌 금융시장에 중장기적인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유럽의 경기회복이 다른 지역보다 더뎌 세수를 빠르게 늘리거나 지출을 줄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재정 불량국들이 재정수지와 경상수지가 모두 적자인 점도 위기탈출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대다수 유럽 국가들이 위기 이전부터 ‘큰 정부’의 폐해에 시달려왔다는 점이다. 공공부문 비중이 높고 사회보장 관련 지출이 OECD 평균을 크게 웃돌고 막대한 정부지출을 충당하느라 세금부담이 매우 높다. 각종 규제로 기업하기가 쉽지 않아 유럽 기업들은 해외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실업률을 높이고 세수기반을 약화시켰다. 물론 유럽의 상대적으로 앞선 사회안전망과 높은 세출규모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 대한 완충작용을 하며 서민생활 안정과 내수경기 급랭을 막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는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경제 강국들의 얘기이고 남유럽국가들에게는 재정파탄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부는 “우리 재정은 건전하다”며 국내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국제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비율은 높지 않다고 할 수 있겠으나 증가속도가 너무 빠른데다 ‘그림자 국가부채’가 너무 많다는 데 문제가 있다.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잠재적 국가부채인 공기업의 부채와 한국은행 통화안정기금 및 4대 연금 준비금부족액 등이 앞으로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재정규율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국가채무의 유형별 내역을 수시로 공개하며 유사·중복 및 인기영합성 재정지출은 억제해야 한다.
경상수지 흑자지속이 중요
향후 수년간 재정수지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경상수지 흑자를 지속시켜야 하는 점도 중요하다. 최근 미국의 은행규제와 중국의 긴축, 유럽의 재정위기 등이 겹치는 바람에 원화강세와 유가상승세가 한풀 꺾인 것은 다행스러우나 경제회복세와 재정의 상대적 양호에 힘입어 원화가 다시 강세로 반전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해야 한다.
금융시장의 불안이 해소되려면 무엇보다 민간부문의 자생적 회복가능성이 확인돼 경제가 정상화 궤도에 올라야 한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경기회복을 주도해 왔으나 앞으로는 민간의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 기업은 위기 이후 살아남을 수 있는 품질관리와 경쟁력강화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도요타 리콜 사태와 함께 국가와 기업이 시장과 소통하며 변해야 산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안순권(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