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경] 갈림길에서

입력 2010-02-09 18:12


아참! 이메일에 글귀를 저장해 놓았었지. 상대방이 내가 발송했던 메일의 회신버튼을 이용해 그대로 답신해 온 것을 보고서야 이메일의 끝 인사말에 달아놓은 문구를 기억해 냈다.

제목은 ‘갈림길’이다.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다. 그럴 때 내리는 선택이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다.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의 대처 방식이 인생의 갈림길로 작용하는 것이다.” 갤러거와 벤추라의 ‘도대체 누구야?’ 중에 있는 글이다.

이 글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을 조금 더 구체화시켜 준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었을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이 직장을 그대로 다녀야 하는지, 결혼은 적령기에 반드시 해야 하는지, 어떠한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 직업, 배우자, 가치관이 인생에 있어서 세 가지 큰 선택이라고 하던 데, 나 역시 세 가지 고민을 한꺼번에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제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어느 하나 명확한 구석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희열감은커녕 희뿌연 안개 속을 거니는 느낌이다.

며칠 전은 아버지 생신이었다. 내가 자신 있는 미역국을 한 솥 끓여내고, 퇴근길에는 가까운 빵집에 들러 호두 케이크를 하나 집어 들었다. “초는 몇 개나 드릴까요?”라는 직원의 당연한 물음에 난 부랴부랴 아버지 생년을 생각하고는 손가락을 꼽으며 서툰 계산을 하기도 했다.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나서는 사람에 대해서 공부했다고, 그래서 부모님을 대하는 자세가 이전과는 사뭇 달라졌다고, 많은 부분 부모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고 자만하던 터에 아버지 나이도 잊고 사는 나를 발견하고는 스스로가 딱하게 느껴졌다.

우리 부모님은 조금 뒤처져 아직도 아날로그 세계를 살아가고 있으시고, 노후대비보다는 당장 자식들 뒷바라지에 급급하며 살아오신 분이라는 걸 잘 알기에, 수십 개의 즐비한 생일초가 아버지를 대신해서 많은 말을 들려주었다. 안 그래도 말수가 적으신 아버지는 얼마나 많은 고민들로 홀로 외로우셨을까 생각하니 잠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왜 진작 대화를 통해 알지 못하고, 기껏 가늘디 가는 생일초를 보고 느끼게 되었는지.

아버지의 고민을 내가 대신할 순 없겠지만 나의 고민도, 아버지의 고민도 몇 가지 지혜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은 비슷한 것 같다. 희망을 잃지 않는 것, 항상 노력하는 것, 나날을 새롭게 하는 것, 성실한 것.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다면 혼자 외로워하며 고민하기보다는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로부터 조언을 구하고 함께 고민하여 잘못된 선택을 최소화하는 지혜가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축복이 아닐까.

오늘이라도 아버지의 고민을 조심스럽게 끌어내고 나의 고민들을 털어놓으며 함께 대처해 나가는 가족의 힘을 찾아봐야겠다.

이혜경(한국아동복지협회 기획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