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숙 사모가 혼신을 다해 꽃씨 1000개를 그린 이유

입력 2010-02-09 17:40


[미션라이프] 몇 해 전부터 죽음은 그의 심장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몸에 이상이 생긴 뒤 그는 그림을 그렸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육신의 고통 속에 그린 그의 그림은 어쩔 수 없이 고독하고 적막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향한 동경과 연민 역시 배어 있었다. “그림 한 점 한 점마다 영혼의 눈물을 담으려 했다”고 그는 말했다.

경기도 김포제일교회 김동청 목사의 부인, 손태숙(47) 사모. 그는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예술고에서 관현악 담당 교사로 7년간 일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 석사학위를 땄고, 미국에 건너가 박사 과정을 이수했다. 인권과 여성 운동에도 깊이 관여했다. 김 목사와는 대학교 3학년인 21세 때 결혼했다. 다양한 경력만큼 그는 당차고 똑부러진 여성이었다.

그녀의 육신에 난데 없이 병이 찾아온 건 2007년 여름. 사택 옷방에서 한 달 금식기도를 작정한 무렵이었다. 기도 첫째주부터 가슴이 아파오더니 셋째 주에 들어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몸통 전체가 찢어질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동네 병원에서는 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진단해 위장약을 처방해 줬다. 통증을 줄이기 위해 모르핀도 투여했다. 그러나 통증의 강도가 더 심해지고, 빈도도 잦아지자 서울 한 대학병원을 찾았다.

보름 이상의 각종 검사 끝에 스트레스성 심근경색이란 진단이 나왔다. 오른쪽 허벅지 혈관을 통해 심장에 스탠트(혈관확장 철망)를 심는 시술에 들어갔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것같이 가늘고 약한 혈관이 문제였다. 몇 시간의 시술을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겼을 때 문제가 터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뭔가 폭발하는 느낌이 들더니 온 몸에서 땀이 나고 코, 눈, 귀 등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것이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그는 “주님, 너무 고통스러워요. 빨리 저를 데려가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몸은 움직일 수 없지만, 당시 상황은 보고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맥박을 나타내는 모니터 수치가 60, 50, 40으로 계속 떨어지더니 ‘삐-’ 소리와 함께 정지됐다. 의사들은 다급하게 심장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기적과 같이 몇 분 뒤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때 밖에서 기다리던 김 목사가 곁으로 왔다. 의료진으로부터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다.

밤샘 사투 끝에 손 사모는 고비를 넘겼다. 얼마 뒤 퇴원을 했지만 혈관이 터진 탓에 피부는 나무껍질처럼 거무튀튀했고, 복부는 임산부처럼 부어올라 있었다. 의사의 말은 절망적이었다. “길어야 9∼10년, 그 이후엔 심장 기능이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 2008년 4월과 지난해 9월 차례로 쇼크가 왔고, 손 사모는 다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그림은 첫 번째 시술을 받은 이후 그리기 시작했다. 안정을 위해 그림을 그리거나 동물을 키워보라는 의사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동네 문화센터나 개인 미술학원에서 기초를 배웠다. 어린 시절 사생대회에 나가면 곧잘 상을 타곤 했지만, 그 이전 본격적으로 배운 적은 없었다.

지난해 6월 손 사모는 김포 애기봉에서 열린 구국기도회에 참석했던 소강석 목사에게 그의 시집 ‘꽃씨’를 선물 받았다. 처음에는 대충 훑어보고 던져놨다고 한다. 그런데 세 번째 시술을 받은 뒤에 읽은 시는 달랐다. 세속적 사랑과 정을 얘기하는 것 같았던 시들이 주님과 나의 관계, 나 자신의 신앙 문제로 다가왔다.

‘…이 세상을 떠나는 날/나는 이 꽃씨들을 천국에 가져가렵니다.’(꽃씨 中)

그날 손 사모는 방바닥에 엎드려 “주님, 주님”을 부르며 새벽까지 울었다. 그리고 시를 화폭에 옮기기 시작했다. 남편은 외부 일이 많았고, 아들은 미국 유학 중이었다. 집은 손 사모의 개인 작업실로 변했다. 그는 캔버스 옆에 시집을 놓고, 묵상하고 기도하며 하루 10시간 이상씩 그림에 매달렸다. 서울의 병원에 갈 때면 홍익대 앞과 인사동 주변 화랑에 들러 몇 시간이고 그림을 보고, 연구했다. 온 신경을 쏟다보니 가슴 부근이 자주 아파왔고, 지난달에만 협심증 치료제 니트로글리세린 50∼60알을 먹었다(김 목사에겐 비밀로 했다고 한다). 그렇게 소 목사의 시는 ‘창가에서’ ‘별’ ‘사랑’ ‘눈물’ ‘나비’ ‘추목’ ‘꽃씨’ 등 손 사모의 그림으로 재탄생했다. 말 그대로 혼신을 담아 그려낸 것들이다.

그는 특히 꽃씨란 그림을 좋아한다. 바탕 그림부터 완성까지 4개월이 걸린 그림이다. 마지막 작업으로 28시간을 들여 꼭 1000개의 꽃씨를 화폭에 그려 넣었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서 배춧잎에 된장을 찍어 먹으면서도 그리기를 계속했다. ‘이 꽃씨들이 우리 교회 성도들이다. 내가 하늘나라에 가더라도 이 꽃씨들이 꽃으로 필 수 있기를 기도하겠다’고 거듭 생각했다고 한다. 그림 왼쪽 상단 하늘 부근에 1000번째로 하얀색 꽃씨를 찍은 뒤 손 사모는 기력이 다해 또 병원 응급실 신세를 져야했다.

손 사모 그림 중 26점이 지난 1∼3일 김포제일교회, 6∼7일 새에덴교회에 전시됐다. 다음달 15일부터 일주일간 김포시민회관에서 손 사모 개인전도 열린다. 수익금은 전액 아이티 구호 성금으로 쓸 계획인데, 그림은 이미 다 팔렸다. 김포제일교회에 그림이 전시됐을 때는 소 목사를 초청한 신년 대부흥회도 열렸다. “1000개의 꽃씨를 그린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평소 400∼500명이 모이던 집회에 이번엔 1000명의 성도들이 왔다”며 김 목사가 웃었다.

지난 7일 김포제일교회에서 만난 손 사모는 눈빛이 밝았다. 그림을 그리고 나서부터 영적으로 맑아져서 그런지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몸이다. 병원에선 오는 7, 8월 또 한 차례 고비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의 손가방 속에는 10여종의 약과 응급 상황에 대비한 남편과 담당 의사 연락처, 시신기증서 등이 들어있었다. 그는 언제 죽더라도 두렵지 않지만, 다만 사모로서의 소명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 미안하다고 했다.

손 사모는 이제 글쓰기를 시작하려 한다. 글을 쓰고 거기에 맞는 그림을 그린 뒤 책으로 만들어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로 나눠 줄 계획이다.

“더 많은 걸 내려놓으라고, 바보처럼 살라고 하나님이 큰 병을 주셨습니다. 이제 주님 부르실 때까지 영혼의 정원에 꽃씨를 뿌리며 지내고 싶어요.”

김포=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지호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