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림 아나운서 "방송사 공허함 내려놓으니 열정의 새삶 내 앞에"
입력 2010-02-09 17:08
박나림(월드비전 홍보대사·전 아나운서) “당신 빽으로 들어간 방송사, 8년만에 내려놓고 봉사와 열정의 삶 살아 행복해”
하나님을 아는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나는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내성적인 사춘기 소녀시절 내 일기장은 친구에게조차 말하지 못하는 온갖 고백들을 하나님 앞에 투정부리듯 올려드리는 글들로 채워져 있다. 미성숙한 어린 소녀의 크고 작은 기도들에 하나님은 사랑으로 응답해 주셨다.
1996년 문화방송에 1800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빽’이 있느냐며 질문할 때마다 “하나님 ‘빽’이죠!”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실력만으로 단번에 들어갈 수 없는 좁은 문이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고비마다 하나님이 놀라운 도움을 받았다. 내가 본 영화와 연극 등에서 시험문제가 나왔다. 어린시절부터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던 성품을 가진 내가 면접장에서 뻔뻔하리 만큼의 담대함을 보였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성령님의 도우심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방송계로 이끄신 하나님은 20대 젊은이로써는 과분한 세상과 사람에 대한 풍성한 경험을 하게 해 주셨다. 부족함이 많았기에 때마다 기도했다. 하나님은 차근차근 훈련시켜 어느덧 한 시간의 생방송도 거뜬히 진행해내는 아나운서가 되게 하셨다.
그러나 초단위로 바쁘게 돌아가는 방송생활을 하면서 어느새 내 삶에서 윤기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보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을지 모르지만 나는 결코 즐겁지 않았다. 기쁘거나 신이 나지도 않았다. 자기계발도 해보고 다양한 취미생활도 해봤다. 여행도 다녀보았지만 허전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잎은 무성하지만 열매가 없는 나무 한그루. 그것이 내 자신의 모습이었다.
2004년 10월. 많은 분들이 만류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정든 이들이 있는 문화방송을 떠나온 것도 삶 속에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때문이었다. 그 공허함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져있음에서 온 것이라는 것은 시간이 흐른 후,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이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라는 말처럼 신비한 말이 있을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그 뜻이 이해된다.
문화방송을 떠나온 후 소용돌이처럼 휘돌아가는 세상에서 잠시 조용한 곳으로 물러나 앉았다. 그리고 제 삶의 정돈되지 못한 영역들로 인해 마음속의 번잡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때, 복잡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집어든 책 한권을 통해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제 삶 속으로 들어오셨다. 사람들로 인해 지쳐있던 저에게 하나님은 ‘사랑은 오래참고…’ 그 한 구절의 말씀으로 찾아오셨다.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경험이다. 그동안 온통 세상만 바라보며 살아오던 나를 오랫동안 외사랑 하듯 바라보시고 기다려주신 하나님의 마음이 가슴속에 파고들었다.
그 날로부터 제 삶에 이전에 없던 평화로운 파장이 일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 아기가 말을 배우고 걸음마를 배우듯 하나님과의 새로운 대화가 시작되었다. 말씀이 삶 속으로 들어오고, 무엇보다 삶의 방향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더해질수록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주시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게 해주고 계신다.
요즘 내가 가장 마음을 쏟는 일들은 ‘공부하기, 가르치기, 그리고 나누기’이다. 특히 월드비전의 일은 만약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였더라면 내 수준을 생각해봤을 때 아마도 그저 착한 봉사활동을 한다는 만족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월드비전 활동을 하면서 하나님이 제게 보여주시는 세상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은 ‘같이 울어줄 네가 필요하다’였다. 그저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같이 울어주는 것 이상은 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러한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무엇보다 나를 회복시키셨다.
내가 ‘하나님의 딸’로써 이 땅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살아야하며 내게 주신 재능과 경험과 시간과 물질 등이 저를 통해 어떻게 흘러가야하는 하는지를,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깨닫게 해주셨다. 그리고 삶의 목적을 회복하자 내 안에 어디에서 생겨났는지 모를 열정들이 솟아났다. 그래서 뒤늦게 시작한 박사과정의 학업이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들도 비록 때로 몸은 고달프지만 나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 어느 학창시절보다 몰입하게 된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이후, 최근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어디에서 그런 열정이 생겨나요?’이다.
하나님은 세상 맛보기에 넋이 나가있던 나를 참으로 오래 기다려주셨다. 그리고 탁구공처럼 이리저리 튀는 엉뚱한 내 삶을 하나씩 하나씩 조율해주시고 계신다. 아직도 나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여섯 살짜리 말썽쟁이다. 지난 6년 동안 내 삶의 질적 변화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 같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이 더욱 기대되는 것은 내 삶을 튜닝해 연주하시는 이가 하나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정리=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