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황경애 (12) 보스턴대 포기하려는 아들… 편지·눈물로 어루만져

입력 2010-02-09 17:31


“우리 아이는 주말이면 TV만 보려고 해요.” “아무리 감시해도 틈만 나면 인터넷 게임을 하고 있어요.”

요즘 집회나 세미나를 인도하다 보면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들을 많이 만난다.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TV와 컴퓨터를 치우면 된다. 이것이 일곱 번째 자녀교육 원칙이다.

아예 집에 TV가 없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게 또 어디 있을까. 하지만 상황이 그러지 못할 바에야 아이들에게 TV를 보지 말라고 말하기보다 TV를 봐도 재미가 없게 만들면 된다. TV를 틀었는데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없으면 보라고 해도 아이들은 보지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케이블 TV를 신청한 적이 한번도 없다. 아무래도 TV 채널이 많다 보면 쉽게 TV를 보는 재미에 빠지게 마련이다.

또 컴퓨터는 거실에 설치해 공개적인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만 볼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어차피 대학에 가면 각자의 방에 컴퓨터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자제력이 약해 부모의 강력한 통제가 필요하다. TV나 게임에 빠졌다고 자녀를 걱정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자. 요즘엔 TV 드라마나 인터넷 등에 빠진 어른들도 상당수다. 자녀를 위해 과감히 ‘보는 재미’를 포기해 보자.

여덟째, 자녀와 적극적으로 대화하라. 존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크게 다툰 적이 있다. 느닷없이 힘들게 합격한 보스턴대를 가지 않고 집 근처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니면서 돈을 벌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아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공부도 어렵고, 몸도 아프고, 환경적으로 모든 게 짜증이 났던 것 같다.

“존, 엄마가 좋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일해 왔는지 잘 알 텐데,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니?” 아들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그러자 아들은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엄마가 힘들게 일하는 게 싫어요. 그러니까 제가 나가 돈을 벌면서 공부하겠다는 거예요.”

물론 그것은 고맙고 기특한 생각이다. 하지만 엄마의 심정을 더 깊이 헤아리지 못하고, 더 멀리 내다보는 눈을 가지지 못하고, 바로 앞에만 급급한 아들이 한심스러워 속이 상했다. 환경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꿈을 포기하겠다는 아들이 그저 안타까웠다. 더 이상 말을 하면 심하게 싸울 것 같아 편지를 쓰기로 했다. 그런데, 오히려 존은 그 편지를 받고 입을 굳게 닫아버렸다. 엄마의 진심을 알아주지 못하는 아들이 그저 섭섭했다. 그렇게 서로 말을 하지 않은 채 일주일을 보냈다.

시간이 흐르니, 먼저 말을 꺼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 또다시 일주일…. 어렵게 존의 이름을 불렀다.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그간의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나 역시 마음을 털어놓았고,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고 나니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

“환경은 극복해야 하는 거야. 어떤 고난이 우리에게 온다고 해도 이겨내야 해. 하나님은 우리 편이시니까. 비가 온 뒤에 땅은 더 굳어지는 거야.”

존은 보스턴대에 진학했고 기적처럼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지금은 미 외교관 장학생에 뽑혀 외교관 훈련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부모들이여, 늘 자녀와 대화할 준비를 하고 기다려라.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