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희 “밑바닥서 키운 자신감이 내 연기의 힘”
입력 2010-02-09 17:47
영화 ‘평행이론’서 최연소 부장판사역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 제가 가진 장점은 하나도 없었어요. 나이도 많지, 경험도 인맥도 없지. 더 떨어질 곳이 없었죠. 잃을 게 없다는 자신감, 그게 지금까지 연기를 하게 만든 힘입니다.”
배우 지진희는 올해 마흔이다. 2000년 ‘줄리엣의 남자’로 데뷔했다. 올해로 이제 10년 차. 나이에 비해 데뷔가 늦었다.
지난 10년 간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했다. MBC 드라마 ‘대장금’(2003)의 믿음직한 종사관 ‘민정호’에서 ‘스포트라이트’(2008)의 무서운 시경 캡, KBS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의 초식남 조재희. 그는 끊임없이 이미지 변신을 꾀하며 연기에 도전했다. 그의 11번째 영화는 오는 18일 개봉하는 ‘평행이론’이다.
지난 4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최고가 되진 못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의 10년을 평했다. 말수가 적을 것 같은 이미지와 그는 다르다. 그는 유쾌한 달변가다. 말과 태도에서는 자신에 대한 강한 확신과 열정이 묻어나왔다. 그에게도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밑바닥이 있다. 그걸 딛고 지금 이 자리에 올려놓은 건 ‘긍정의 힘’이다.
“‘어차피 시작한 일, 희망을 찾자’고 다짐했어요. 사회생활 경험이 도움이 될 거라고 스스로 다독이고, 10년 후에는 대 스타가 돼 있을 거라고 주문을 걸었죠. 내 위치를 정확하게 알았으니 실망할 것도 없었고, 한 작업을 마칠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도 컸어요.”
‘평행이론’은 다른 시대를 사는 사람이 같은 삶을 반복해 산다는 줄거리의 영화다. 실제 미국의 링컨과 케네디의 사례를 보면 두 사람이 의원에 당선된 해는 각각 1846년과 1946년, 대통령에 당선된 해는 1860년과 1960년이다. 둘은 금요일에 암살됐고, 암살범은 1839년생과 1939년생이었다. 영화는 이런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평행이론’으로 전개된다. 그가 연기한 최연소 부장판사 김석현은 아내가 살해된 뒤 과거 자신과 같은 삶을 산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인물이다.
극이 다소 산만하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평행이론’은 본 후에도 계속 생각하게 되는 영화”라며 “관객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영화의 묘미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매 작품마다 최선을 다하는 그의 스타일답게 이번에도 실제 판사 출신 변호사들과 교류하며 역할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스포트라이트’ 출연 시에는 사건팀 기자들 회식에도 참가했다.
“‘한번 캡은 영원한 캡’이라는 말 알죠?(웃음) 아직까지도 당시 친분을 쌓은 기자들과 연락하고 지냅니다. 이번엔 법무법인 ‘바른’의 홍지욱 변호사님께 큰 도움을 받았어요. 홍 변호사님이 대본 잘못된 부분도 고쳐주시고, 판사라는 직업 전반에 대해 많이 알려주셨죠.”
그는 최선을 다한 뒤에는 후회하지 않고, 앞날을 걱정하는 대신 거울을 보고 한 번 더 웃는다고 했다. 또 그는 역시 그런 자세로 다가오는 10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5년 뒤에는 더 멋진 배우가 되고 싶고, 계속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내 마지막 작품이 인생 최고의 작품이길 꿈꿉니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