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본안 첫 판결… 은행이 이겼다

입력 2010-02-08 21:43


법원, 수산중공업 청구 기각

환율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한 통화옵션 계약상품인 키코(KIKO) 관련 첫 소송에서 법원이 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부장판사 임성근)는 8일 수산중공업이 우리은행과 씨티은행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등 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키코 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사건에서는 법원 결정이 엇갈렸으나 본안 소송에 대한 첫 판결에서 은행이 승소함에 따라 법원에 계류 중인 120여건의 다른 키코 소송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재판부는 “계약 체결 당시 예상치 못했던 결과가 사후에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계약이 적정했는지 섣불리 판단해선 안 된다”며 “계약 체결 당시 국내외 전문가와 금융기관들은 2008년에 환율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고, 환율 급등에 대한 구체적인 예견은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키코 상품이 구조적으로 은행이 이익을 볼 수밖에 없는 상품이라는 수산중공업 측의 주장에 대해 “키코가 부분적으로만 환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상품이지만 환율 변동성이 낮은 경우라면 상당한 범위 내에서 환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산중공업은 2008년 11월 “키코 계약을 맺으면서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아 손해를 봤다”며 우리은행과 씨티은행을 상대로 180억여원의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수산중공업의 청구를 기각하면서 “수산중공업은 씨티은행에 3억1600만원의 키코 계약해지 결제금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수출업체 한국아이티씨가 씨티은행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도 원고 패소로 결론났다.

그러나 재판부는 “수출기업으로서는 환율 상승에 따라 현물 외환시장에서 환차익을 얻을 수 있는데 키코 계약으로 계약금의 2배를 은행에 매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와 대단히 안타깝다”며 “은행들도 기업이 처한 사정을 이해하고 지속적인 지원과 협조를 해 주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소송 과정에서의 앙금을 털어버리라”고도 했다.

키코 소송은 최근 해외 석학 간 대리전으로 이어져 기업과 은행 측에서 각각 노벨 경제학상 수상 경력이 있는 교수들을 법정 증인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환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는 “형평성에서 벗어난 판결”이라며 “너무 황당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은행 관계자는 “당연한 판결”이라며 “판결을 존중해야 하며 상거래의 기본적인 원칙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Key Word 키코

키코는 ‘녹인 녹아웃(Knock-In Knock-Out)’의 약자로 환율 변동에 따른 불안정성을 피하기 위한 금융 상품이다. 기업과 은행이 협의해 환율변동 상한과 하한, 약정환율을 미리 정해놓고 환율이 그 안에서 변동하면 약정환율을 적용토록 한다. 수출에 주력하는 중소기업이 안정적인 경영을 하기 위해 주로 가입했다. 그러나 약정환율 상한 이상이 되면 계약금의 2배를 약정환율에 매도해야(Knock-In) 하고 약정 이하로 떨어지면 계약이 무효가 된다(Knock-Out).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환율이 치솟자 키코 계약을 맺은 기업들이 큰 손해를 봤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