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압박에 백기 든 금호 일가… 집 제외 모든 재산 내놓고 경영권 지켜

입력 2010-02-09 00:42

막판에 합의서 보내… 계열사 구조조정 속도낼 듯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주 일가가 채권단의 고강도 압박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박삼구 명예회장과 박찬구 전 그룹 화학부문 회장 등 금호그룹 대주주들은 보유 중인 금호석화 주식 등 계열사 주식 일체를 채권단에 담보로 넘기기로 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계획이 진행되지 못했던 금호산업 등 금호그룹 계열사들은 정상화를 위해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금호산업 등 구조조정 원안 추진=산업은행은 8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찬구 전 회장과 박철완 그룹 전략경영본부 부장이 보유 중인 금호석화 주식 등 계열사 주식 일체를 담보로 제공하고 의결권 및 처분 위임동의서를 채권단에 넘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재를 출연하겠다던 당초 약속을 결국 지키기로 한 셈이다. 대신 금호그룹 일가는 채권단이 약속한 대로 그룹 경영권을 보장받기로 했다.

김영기 산은 수석 부행장은 “그동안 일부 대주주의 경영책임 이행 문제가 지연되면서 협력업체와 관련 기업들이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금호 대주주가 다행히 막판에 합의서를 보내 진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박 전 회장 일가의 사재출연으로 대주주의 경영책임 이행 문제가 일단락된 것으로 보고 기존 계획대로 금호그룹에 대한 정상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산은은 이달 말까지 금호그룹 경영정상화 방안에 대한 큰 그림을 마련하고 다음달까지 세부 방안을 확정해 구조조정을 진행키로 했다. 이를 위해 대우건설 재무적투자자(FI)들과 금호 계열사 노동조합을 상대로 워크아웃 플랜 동의를 독려할 계획이다.

금호석화와 아시아나항공은 자율협약에 따른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해서는 워크아웃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금호 협력사에 대한 자금지원은 설 이전에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은 금호산업, 금호타이어와 이들 회사 협력업체에 지원키로 했던 3800억원 규모의 운영자금도 이번주 중 모두 집행할 예정이다. 다만 신규자금 지원 문제는 노조가 동의서를 제출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김 부행장은 “노조 동의서 제출을 전제로 신규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며 이에 따라 4개 계열사에 대한 경영정상화도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호家, 왜 백기 들었나=금호 사주 일가는 경영권을 보장받는 대신 현재 보유 중인 주택을 제외한 모든 재산을 내놓기로 했다. 금호그룹 오너 가운데 사재출연을 거부한 쪽은 박 명예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대주주들이었다. 자신들에게는 경영부실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룹 산하 계열사가 46개나 포진한 상황에서 채권단이 쉽게 일부 계열사를 법정관리나 추가적인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택하지 못할 것이라는 배짱도 사재출연을 거부하도록 했다.

박찬구 전 회장은 사재출연을 약속했지만 의결권은 넘겨주지 않았다. 금호석화의 경영권에 대한 집착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채권단이 자율협약체제에 들어갔던 금호석화에 대해 워크아웃 가능성 및 경영권 박탈 가능성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해선 법정관리 가능성을 언급하며 ‘초강수’로 나오자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백기를 든 것으로 보인다.

금호석화가 워크아웃에 들어갈 경우 지분구조상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통운까지 사실상 그룹 전체의 경영권 행사를 제약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호 오너 일가는 금호산업 지분 10%(약 300억원) 외에 금호석화 지분 47%(현 시가총액 기준 약 2200억원)로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통운 등 계열사를 지배해 왔다.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채권단이 부채비율을 줄이기 위해 금호석화 감자를 단행하고, 부채를 출자로 전환하게 되면 오너 일가의 지분도 줄어들 수밖에 없어 대주주 자격을 잃게 될 것이란 우려도 사재출연에 동의한 배경이다.

황일송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이승민 대학생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