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현대차에 700억 배상”… 법원, 불법 유상증자 피해 판결
입력 2010-02-08 21:39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계열사 유상증자에 참여하도록 현대차에 지시한 것은 명백히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이라며 700억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700억원은 대기업 현직 경영자를 상대로 소액주주가 주주대표 소송을 통해 받아낸 배상액 가운데 역대 최고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부장판사 변현철)는 8일 김모씨 등 현대차 소액주주 14명과 경제개혁연대가 정 회장과 김동진 전 현대모비스 부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14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정 회장이 현대차에 700억원을 지급하고, 그 가운데 50억원은 두 사람이 함께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 회장은 현대차의 계열사 유상증자 참여가 경영판단 원칙에 따른 행위였고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며 “하지만 정 회장 개인의 연대보증 채무를 없애려고 현대차가 손실을 봤고, 현대우주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그룹 경영권에 대한 위협을 방지하려고 한 점에서 주주들의 손해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경영상의 판단이라도 정해진 범위를 넘어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경우 형사는 물론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까지 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재판부는 정 회장의 불법 행위로 현대차에 발생한 손해액을 1438억원가량으로 산정했다. 다만 당시 외환위기라는 비상상황에서 부득이 계열사의 보증 채무를 부담했고, 형사재판 과정에서 개인 재산 15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한 점 등을 감안해 실제 배상 금액을 700억원으로 한정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정 회장 등이 1999년 현대우주항공 등 계열사에 대한 불법 유상증자 참여와 현대모비스에 대한 부당지원 등으로 회사에 5631억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며 2008년 4월 현대차에 정 회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라고 요구했다. 상장법인 총 발행 주식의 0.01% 이상을 6개월 이상 보유한 주주들은 회사에 손해를 끼친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대표소송을 할 수 있는데 이에 앞서 회사 측이 직접 소송을 제기하라고 먼저 청구해야 한다. 하지만 현대차가 경영 행위에 소송을 제기할 의사가 없다며 거부하자 경제개혁연대는 소액주주들과 함께 주주대표 소송을 냈다.
현대차 관계자는 “회사 방침은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으나 정 회장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개혁연대도 항소 의사를 밝혔다. 정 회장은 2008년 6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 300시간을 선고받았으며 그해 8월 15일 특별사면됐다.
임성수 이제훈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