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원 불신 반영하는 항소율 낮추려면
입력 2010-02-08 18:07
지난해 전국 지방법원 합의부 형사사건 피고인 10명 중 6명이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항소한 형사 피고인 10명 중 4명은 1심과 다른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이 8일 발표한 지난해 항소율과 1심 파기율은 피고인들이 법원 판결을 불신해 ‘묻지마 항소’ 풍조가 만연해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최근 일부 법관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로 법관에 대한 불신을 자초한 것과 함께 법원의 신뢰 위기를 경고하는 일이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피고인의 혐의가 사형·무기 또는 단기 1년 이상의 징역·금고형에 해당하는 형사합의 사건 피고인 1만7731명 중 1만667명이 1심 판결에 불복, 항소했다. 항소율 60.2%로 전년도의 55.4%보다 늘어났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항소율이 10∼20% 수준임을 감안할 때 ‘항소부터 하고 보자’는 게 법정 관행처럼 되어 있는 것이다. 더욱이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의 유·무죄가 뒤집히거나 형량이 바뀌는 파기율이 40.9%나 됐다. 피고인들의 묻지마 항소를 무조건 나무랄 일만도 아니다.
일단 항소하면 법원이 이런저런 이유로 형량을 깎아주는 경우가 많은 현실이 항소율을 높이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묻지마 항소도 문제지만 그것이 통한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항소심에서 파기율이 높은 것은 유·무죄 판단보다는 주로 양형을 변경하기 때문이다. 법원의 양형이 법원이나 심급에 따라 고무줄이 된다면 누구라도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객관적 양형기준을 빨리 확립해 이를 적용하고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는 한 항소심에서 이를 존중하는 관행이 정착되어야 1심 판결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항소율이 높다는 것은 송사에 과도하게 시간과 경제력을 쓰는 국민들이 많다는 뜻이다. 공정한 재판과 정확한 양형 관행이 자리 잡혀야 재판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불신 받는 판결이 나오는 데는 법관 수가 부족해 법관들이 심리를 충분하게 하지 못하는 데도 원인이 있다. 경력 법관제를 조속히 도입해 법관 수를 늘리면서 장기적으로 법조일원화를 완성하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