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강효백] 한·중 고속철도를 건설하자
입력 2010-02-08 18:05
설 연휴를 맞아 중국의 기차역마다 고향을 향한 귀성인파가 절정을 이룬 지난 6일, 정저우에서 시안의 505㎞를 세계 최고 속도인 시속 350㎞로 1시간 30분에 주파하는 고속철도가 개통됐다. 지난해 12월 26일 우한에서 광저우의 1069㎞를 3시간에 주파하는 고속철도를 개통한 지 두 달도 안 됐는데 또 고속철도 개통이라니, 중국 전체가 마치 통째로 질주하는 한 대의 고속열차로 느껴지는 요즘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중국은 약 4조 위안(약 800조원)을 경기부양자금으로 투입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인 2조1500억 위안을 고속철도, 도시간 광역철도, 지하철 등 이른바 ‘3철(鐵)’건설에 쏟아 부었다. 사회간접자본 가운데 저탄소, 저에너지, 친환경 교통수단인 철도에 주력한 것이 주목된다.
中, 양국 해저터널에 부정적
중국은 2012년까지 1만3000㎞, 2020년까지는 2만5000㎞의 고속철 노선을 건설해 전국 22개 성과 4개 직할시 전부를 1일 생활권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중국 철도부가 최근 공개한 42개 노선의 고속철 건설계획도 중 눈을 비비고 자세히 살펴볼 노선은 둘. 2012년 개통예정인 베이징-선양-단둥노선(980㎞)과 2020년 개통예정인 샤먼-대만해협-대만노선(126㎞)이다.
한편 우리나라 경기도는 지난해 1월부터 한국 서해안과 중국 산둥성 지역을 연결하는 한·중 해저터널(약 340∼390㎞) 건설 계획을 정부에 제안했다. 경기도는 공사 기간을 20년으로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 터널보다 7∼8배나 짧은 영·불 해저터널(49㎞)의 공사기간이 8년이었던 점을 들어 실제는 50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2일 우리 정부가 한·중 해저터널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공식 발표하자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를 비롯한 관영언론들이 거부감을 드러내며 반대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인민일보 전자판은 이 문제의 토론을 위한 웹페이지를 개설했는데 대부분의 공간을 반대론자들의 의견을 소개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도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중국인들 중 76.4%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하였다. 한·중 터널을 혹평하는 데 반해 통합효과가 뛰어난 대만과의 양안터널이 더 중요하다는 자국의 전문가들의 주장을 부각시키고 있다. 중국체제 특성상, 인민일보는 중국공산당과 중앙정부의 대변인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한·중 터널은 이미 물 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다고 분석된다.
따라서 한·중 터널의 대안으로 필자는 서울-단둥 간의 ‘한·중 고속철도’ 건설을 제안하고자 한다. 한·중 교류 활성화와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 등 막대한 파급효과는 물론 기술적 가능성과 사업비, 공사기간, 경제성과 안전성 등 건설프로젝트 자체만 놓고 보아도 고속철도가 해저터널보다 훨씬 좋다. 한·중 고속철도 건설은 현 정부의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저탄소녹색성장 정책과도 부합된다.
‘철의 실크로드’ 역할도
앞으로 3년 안에 베이징과 압록강 하구의 변방 도시 단둥까지 고속철도로 연결하려는 중국의 동선(動線)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한·중 고속철도 건설 건에 대해 중국은 먼저 청하지는 못하지만 마음 속 깊이 바란다는 뜻인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의 속내로 호응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과 최근 평화협정 회담을 제의한 북한의 입장 등을 감안한다면 일은 의외로 쉽게 성사될 수도 있다.
한·중 고속철도는 얼음처럼 차갑게 경색된 장벽을 깨뜨려 일거에 국면을 전환하는 ‘아이스 브레이크’로 작동할 것이다. 남과 북의 가슴 밑에 깔린 얼음장이 쩡하고 갈라지게 할 것이다. 한·중 고속철도는 우리의 국력이 한반도 전체와 아시아와 시베리아를 넘어 유럽까지 쭉쭉 뻗어나가는 ‘철의 실크로드’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이다.
강효백(경희대 교수·국제법무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