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병원 선택의 조건
입력 2010-02-08 17:58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갖가지 검사 다 해놓고 말기에 이르도록 다 자란 암의 그림자조차 못 잡은 A병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50대 가장 P씨의 항변이다. 그는 동네 병원의 의사가 값비싼 검사도 않고 문진과 촉진만으로 대뜸 의심할 수 있었던 것을 도대체 큰 병원의 의사가 왜 몰랐는지 알 수 없다며 울먹였다.
P씨는 얼마 전 B병원에서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진단을 받았다. 간암 4기. 기침이 멎지 않고 가슴이 답답해 집에서 가까운 A병원에서 한 달 반 이상 치료를 받았으나 차도가 없었다. 그러다 최근 배가 아파 급히 들른 동네 병원에서 복수가 찼으므로 빨리 B병원으로 가보라고 했고, 그는 그곳에서 말기 간암 판정을 받았다.
40대 L씨는 약 1년 전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으로 이 세상과 작별했다. 부부 갈등으로 이혼 위기에 처했던 그는 우울증 환자였다. 생업에 쫓겨 양극성정신장애, 즉 조울증에 대한 치료를 소홀히 한 것이 화근이었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한의원을 경영했던 그는 생전 자신의 환자와 주위의 눈을 피해 서울에 있는 B병원을 다녔다.
그러나 지방에서 두어 달에 한 번씩 올라와 속칭 명의로 소문난 주치의와 마주할 수 있었던 시간은 늘 10분 안팎에 불과했다. 자기 고민을 충분히 털어놓고 위로받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결국 그는 철저히 ‘혼자’란 생각에 빠졌고, 남들과 달리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울분을 삭이지 못해 스스로 목을 맸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일어나는 문제 중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현실에서 우리 모두가 바라는 병 잘 고치는 병원과 의사를 만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현대의학은 우선 지나치게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다 보니 정작 전체적으로 판단하고 살펴봐야 할 때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P씨가 뒤늦게 말기 간암 진단을 받은 이유 중 하나도 이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환자가 호소하는 호흡기 증상에만 연연하다 소화기의 이상을 의심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결과론이지만 P씨가 처음부터 A병원을 찾지 않고 B병원을 소개한 동네 병원을 찾았더라면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병, 특히 암 같은 중환은 하루아침에 발병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말기 간암 진단을 받게 됐다곤 하지만 그 싹은 P씨가 A병원에서 헛되이 보낸 한 달 반 기간의 훨씬 이전 시기에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 단골 병원을 만들지 않고, 정기검진마저 소홀히 한 결과다.
L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L씨가 수시 전화 또는 방문 상담을 통해 자신의 속내를 충분히 털어놓을 수 있었다면? 나아가 명의란 허상을 좇지 않고 그를 위해 24시간 상담해줄 수 있는 동네 병원의 의사를 주치의로 삼았다면 파국을 피할 수도 있었지 않을까.
몸이 아플 때 병 잘 고치는 병원 또는 명의를 만나길 바라면서 우리가 흔히 놓치는 것이 있다. 평소 자기 몸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다 병이 들고 나서야 허겁지겁 좋은 병원, 좋은 의사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개인 맞춤형의 좋은 병원, 좋은 의사는 결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의사도 사람이다. 따라서 실수할 수 있고, 설혹 주어진 진료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 급할 때 좋은 병원, 좋은 의사를 만나려면 평소 이 같은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환자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뛰어난 연구업적을 쌓은 의사라고 모두 환자를 잘 돌보는 것이 아니고, 대기 환자가 많은 ‘명의’라도 경우에 따라선 ‘돌팔이’보다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P씨와 L씨의 사례가 그 증거이다.
좋은 병원과 좋은 의사는 평생 한두 번 만날까 말까 한 대형 병원의 의사가 아니라 동네에서 자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병원, 자신의 문제를 귀 기울여 들어주며 건강을 관리해주는 의사다.
이기수 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