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여는 한국교회] 서울 산정현교회는 빛나는 신앙 전통 계승

입력 2010-02-08 17:40

④ 서울 산정현교회

‘동방의 예루살렘’ 평양의 산정현교회는 순교신앙의 일번지다. 1906년 평양 계동에 설립된 교회로 장대현교회에서 분립됐다. 초대 목사 C F 번하이슬(편하설)에 이어 1913년 강규찬 목사가 시무했다. 강 목사는 105인 사건과 관련해 활동했다. 36년에는 진보적인 신학자 송창근 목사가 사임하고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주기철 목사가 부임했다. 주 목사는 36년 일제에 의해 구속돼 고문을 받다가 44년에 순교했다.

3·1 독립운동 이후에는 고당 조만식, 김동원, 오윤선, 유계준 장로 등이 평양 교계와 민족의 샛별로 두각을 보였다. 특히 김동원 장로는 평양에 YMCA를 조직했다. 고당은 총무로서 11년간 평양 YMCA를 이끌면서 기독교 문화운동, 물산장려운동, 신앙운동, 농촌운동을 전개했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속에 한국교회는 배도의 길을 갔으나 주 목사는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제27회 장로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던 38년 4월부터 이미 주 목사는 신사참배 반대로 1차 검속을 당하는 등 고난과 역경의 싸움이 시작됐다. 마침내 39년 12월 19일 제37회 평양노회는 주 목사를 면직했다. 40년 3월 24일에는 예배당이 폐쇄되는 거센 핍박에 직면한다.

그러나 산정현교회 성도들은 주 목사와 함께 고난의 길을 기쁨으로 걸어갔다. 44년 12월 21일 주기철 목사의 옥중 순교는 한국교회의 순결함을 생명을 던져 지켜내는 한 알의 밀알이 됐다.

순교의 역사는 시작에 불과했다. 주 목사의 장남 주영진 전도사는 공산치하에서 순교했다. 방계성 목사와 조만식 장로, 김동원 장로 등이 순교자의 삶을 이어갔다. 해방 후 8월 19일 한상동 목사가 임시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월남하기까지 교회를 섬겼다. 그 후는 방계성 목사가 교회를 섬기다 순교했다.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장기려 장로 등을 배출했을 뿐 아니라 신학계의 거두 송창근 목사와 박형룡 목사 등이 교회를 섬겼다. 8·15광복 후에는 출옥한 성도들이 모여 한국 교회 재건원칙을 마련했다. 하지만 공산당의 진군으로 다시 핍박을 받았다. 김철훈, 장일선 목사와 유계준 장로 등이 순교 또는 구금됐다.

서초동 산정현교회는 한국전쟁 중에는 부산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와 회현동, 후암동, 이태원 등지에서 신앙을 이어오다가 88년 지금의 예배당을 건축, 역사교회의 맥을 잇고 있다.

윤중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