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약국(43)

입력 2010-02-08 09:46

[판]이란

“목사님. 탁구 한 판 치실래요?”

창밖으로 쏟아지는 비를 보고 있는데 예배당 2층 탁구대 있는 곳으로 올라가던 교우들이 꾸벅 인사를 하면서 말을 걸었다. 낮에도 박영묵 선생이 날더러 “목사님 고스톱 칠 줄 아세요? 이렇게 비 오는 날엔 그거 한 판 해야 하는데” 했었다. 물론 나는 숫자 적응 능력이 떨어져서 고스톱을 칠 줄 모른다. 또 얼마 전에는 나이 드신 권사님이 선교회 모임을 마치고 나오면서 다른 회원들에게 “이번 주에는 기도나 한 판 하십시다”해서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러고 보니까 요즘 들어 이놈의 ‘판’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아니, 전에도 누군가가 늘 썼을 말이지만 왠지 귀에 잘 들어온다. 정치[판] 노름[판] 개[판] 아이들[판] 윷[판] 바둑[판] 굿[판] 씨름 [판] 두부[판] 엿[판] 죽을[판] 살[판]….

주일 오후에 빙어 축제장엘 갔더니 많은 사람들이 숭숭 대며 말하길, “축제가 아니라 숫제 먹자판이군, 먹자판이야!” 했다. 그런데 이놈의 ‘판(板)’이란 게 뭐냐 말이다. 그때그때 모이는 사람과 목적에 따라 생겨나기도 하고 깨지기도 하는 이 판이란 뭔가?

‘판’은 절대로 혼자서는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의 반대는 독[판]이 되어서 공동체를 흐트러뜨리는 부정적인 단어가 된다. [판]친다는 말이 있잖은가. [판]은 안으로 오그라뜨리는 게 아니라 밖으로 여는 것이다. [판]에는 꼭 [벌인다]는 동사가 온다. 그러니 [판]은 닫는 게 아니라 여는 거다. 그렇다고 [판]이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닌 듯싶다. [판]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한 곳으로 쏠려가는 획일성의 도랑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먹자[판] 축제처럼 말이다.

아, 그럼 [판]소리도 여기서 나온 말인가? 송진으로 만든 납작한 판(板)데기를 돌려서 나오는 소리도 아닌데 우리는 [판소리]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소리는 그 [판]의 소리인가 보다.

모름지기 기독교도들의 삶이란 사랑 한 [판] 아닌가, 그리스도처럼 사는….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