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역사 바로세우자-(8) 간과되고 있는 구한말 선교활동] 현대 문화예술의 출발점은 예배당이었다

입력 2010-02-07 13:02


최근 아프리카에서 유치원을 세워 어린이 교육선교에 헌신하던 한국인 부부 선교사 가운데 부인이 한국에 귀국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선교비를 마련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내외에 몰아닥친 경제난으로 선교비 조달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 한국인 선교사 부부가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우리나라 정부나 특정 조직이 요구해서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자발적 감사와 영혼구원의 사명감 때문이다.

이처럼 구한말 선교사들의 헌신은 서구 제국주의와 거리가 멀었다. 1891년 윌리엄 베어드(한국명 배위량)와 애니 베어드(안애리) 선교사 부부는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신혼여행으로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왔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전도하며 초량교회 부산진교회 대구제일교회를 개척했다. 1897년에는 숭실학당을 세워 중등과정과 대학과정을 운영하다가 1908년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최초의 근대대학으로 인가를 받았다. 베어드선교사 부부는 개화기 한국에서 두 자녀를 풍토병으로 잃었다. 안애리 선교사는 미국에 가서 암치료를 받다가 배위량 선교사의 한국 사역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우리나라에 돌아온 뒤 숨을 거뒀다. 이들 부부는 한국인들의 영혼과 삶과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내놓고 이 땅에 뼈를 묻었다.

숭실대학을 통해 박형룡 박윤선 한경직 조만식 방지일 김양선 최훈 이만신 박종순 나겸일 임영수 목창균 임승안 오정현 황형택 목사 등의 인물이 배출되고 개화기 이후 우리 사회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이어가고 있다. 베어드 선교사 부부의 이야기가 한편의 장엄하고 위대한 예술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며 새롭게 제3세계 선교 비전을 갖게 한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구속 역사를 펼쳐가시며 세상 역사를 주관하신다. 하나님이 인류 역사의 총감독이다.

한국의 서양음악은 선교사들의 선교 과정에서 찬송가가 불려지면서 본격화됐다. 기독교의 찬송가가 한국 서양음악 교육의 효시가 된 것이다. 19세기 후반 배재학당, 이화학당, 숭실학당 같은 기독교계 학교에서는 찬송가를 가르치면서 음악교육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풍금 플루트 바이올린 등의 악기도 소개됐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국 교회에서도 찬송가를 부르면서 서양음악이 보급됐다. 정동제일교회는 파이프오르간을 개화기의 우리 문화에 선보이기도 했다. 찬송가 창법은 일반인의 평범한 생활 소재를 표현한 창가로 발전해 보편화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찬송가집은 존스와 로드와일러 선교사가 1892년에 함께 펴낸 ‘찬미가’로 알려져 있다. 찬송가는 한국의 서양음악을 가능하게 했다. 아울러 애국운동과 창가운동의 전개로 민족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나아가 찬송가는 신시(新詩)의 발전을 촉발시켜 우리나라의 근대 신문학운동에 발단이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찬송가는 예술 가곡과 대중음악, 유행가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대문화의 모체가 됐던 것이다.

성경의 번역은 우리나라 어문학 발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외국의 기독교문학이 한글로 번역되면서 우리 문학을 풍요롭게 했다. 게일 선교사가 1895년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번역한 이래 많은 번역문학이 선보이게 된다. ‘천로역정’은 한 기독교인이 천국에 들어가기까지의 여로를 소설로 표현하고 있다. 성경의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기독교세계관은 우리 문학의 작품 세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1908년에 나온 안국선의 개화기 소설 ‘금수회의록’은 아홉 마리의 동물을 등장시켜 인간의 부패한 정치 사회 문화를 비판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 회개할 때 구원이 있게 된다는 주제를 형상화했다. 1911년 출간된 배위량 부인의 ‘부부의 모본’은 주인공 박명실과 양진주가 인내와 대화로 기독교결혼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후 전영택 염상섭 심훈 황순원 등이 소설을 통해, 윤동주 김현승 박두진 박목월 등이 시를 통해 기독교가치관을 표현하며 우리 문학의 폭과 깊이를 넓혀갔다.

기독교교육기관에서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그림으로 그려지거나, 기독교 인물들이 조각상으로 표현되고, 고딕양식의 교회당들이 세워지며 기독교는 우리나라의 근현대 미술과 건축에도 영향을 주었다. 기독교는 스포츠 종목의 도입과 활성화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우리나라 근대스포츠는 기독교학교들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배재학당과 숭실대학의 교육과정에서는 성경 인문 과학 수업과 함께 야구 축구 정구 농구와 같은 서양식 운동 경기가 포함됐다. 질레트 선교사가 1905년 YMCA를 통해 야구를 보급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처럼 근대스포츠의 수용은 20세기 초 우리나라 사회교육 속에 인기 스포츠로 각광받으면서 대중화됐다.

이와 같이 기독교는 우리나라 음악 문학 미술 건축 스포츠 등의 예술 분야가 근·현대화되고 새롭게 도입 발전해 가는 데 있어 중요한 원동력이 됐다.

김경완 숭실대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