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구호, 그까이꺼(1)

입력 2010-02-07 09:49

세계를 보며 아직도 거룩한 불만족을 못느낀다면?

1859년 솔페리노 들판에서 프랑스군과 이탈리아군 30만명이 대치하며 15시간 지속되었던 전투. 그리고 우연하게도 31세의 한 청년실업가가 사업차 프랑스로 가던 도중에 그 전투를 경험하게 된다. 죽은 사상자도 문제였지만 일찍 치료가 시작되었다면 살 수 있었을 부상자들의 절규와 고통은 청년의 삶에 BC와 AD가 되었다.

‘뭔가 크게 잘못됐어. 그래.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자.’ 그렇게 자비 출간된 <솔페리노의 회상>(Un Souvenir de Solferino, 1863년)은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솔페리노 주변은 문자 그대로 그물처럼 시체가 널려있었다. 그 어떤 명분이라도 인간의 희생은 있을 수 없다. 나는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훗날 국제적십자사의 창시자이자, 제네바협약의 아버지가 되는 헨리 뒤낭(1828-1910)의 이야기다. 그는 국제정치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외교관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자신이 해야한다고 느낀 것을 그대로 실천했다.

월로우크릭교회의 빌하이벨스 목사는 ‘거룩한 불만족’(Holy Discontent)에서 “비전이란 내가 경험한 불만족을 통해 오는 경우가 있다. 어떤 이에게는 그저 불만족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거룩한 불만족이 되어, 그냥 잠잠코 있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헨리 뒤낭에게 솔페리노의 참상은 ‘거룩한 불만족’이었다.

거룩한 불만족의 특징은 ‘거창함이나 위대함’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직업과 나이와도 상관이 없다. 오히려 “이 문제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물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문제해결을 위한 행동에 나서게 된다. 대개 그렇게 작게 시작한 '겨자의 씨'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역사적이면서도 성경적인 사실이다.

최근 일어난 아이티 재난을 통해서도 현대판 '앙리 뒤낭'을 찾아볼 수 있다. 재난 소식을 접한 영국 런던의 찰리 심프슨이란 7살 소년은 엄마에게 ‘너무 슬프다. 아이티의 또래 친구들에게 성금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그는 최근 타는 법을 배웠던 자전거를 생각했다. “아이티 이재민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동네 공원을 다섯 바퀴 돌게요. 기부를 해주세요.”라는 글을 기부사이트에 올리고 목표액을 92만으로 잡았다. 하지만 모아진 기부금은 하루만에 9000만원이 넘었고, 지난 1월 25일에는 1억8500만원으로 불어났다. 7살 소년이 탔던 자전거가 현대판 오병이어의 기적을 만든 것이다.

아이티뿐 아니라 전 세계의 수많은 문제가 우리에게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그 행동은 대단한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모세에겐 ‘지팡이’가 있었다. 하나님은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 손에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자. 누군가의 지팡이든, 자전거든, 세상을 향해 던졌을 때 오병이어의 기적이 시작된다.



김정태·유엔산하 UN 거버넌스센터 한국지부 근무(블로그: www.theUN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