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전 롯데 포수 임수혁, 10년 투병 끝에 숨져

입력 2010-02-07 18:01

야구는 흔히 인생에 비유된다. 타석(홈)을 떠나면 1루, 2루, 3루를 거쳐 홈으로 돌아와야 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이 과정을 반복한다. 떠나는 건 결국 다시 돌아오기 위함이다.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게 인생이고, 야구다.

10년 가까이 2루에 멈춰선 채 홈으로 들어오지 않는 한 선수가 있었다. 팀 동료들은 물론 다른 팀 선수들, 팬들도 “일어나라, 들어와라”를 외쳤지만 말이 없었다. 그는 홈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그라운드에 쓰러져 뇌사 판정을 받고 9년여 투병해온 전 롯데 자이언츠 선수 임수혁(41)씨가 7일 숨을 거뒀다. 서울 명일동 부친의 집에 있던 그는 병세가 악화해 강동 성심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사인은 급성심장마비에 허혈성 뇌손상 합병증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1994년 롯데에 입단한 임수혁은 공격형 포수로 이름을 날렸다. 데뷔 이듬해부터 주전 마스크를 썼고 타율 0.247에 홈런 15방을 터뜨렸다. 96년에는 타율 0.311에 홈런 11개, 76타점을 기록하며 최고의 성적을 남겼다. 이후 무릎 부상 등으로 꾸준한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결정적인 한 방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야구인생 최고의 순간은 역대 플레이오프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99년 롯데와 삼성의 플레이오프 7차전이었다. 호세의 퇴장으로 벼랑 끝에 몰린 롯데는 9회 초 3대 5로 뒤진 상황에서 1사 1루의 찬스를 잡았다. 대타로 타석에 선 임수혁은 당시 최고의 마무리 임창용으로부터 극적인 동점 2점 홈런을 쏘아올려 팀을 기사회생시켰다.

팬들의 뜨거웠던 함성을 뒤로 한 채 다시 맞은 시즌. 2000년 4월 18일 잠실구장에 선 임수혁의 의욕은 넘쳤다. 팬들의 기대도 컸다.

2회 초 5번 지명타자로 출전한 그는 상대 실책으로 1루에 나간 뒤 후속 타자 안타로 2루까지 진루했다. 그리고 갑자기 쓰러졌다. 4월 한낮의 따스한 햇살이 몸 위로 쏟아졌다. 그는 눈을 크게 뜬 채 푸른 하늘을 바라봤다. 그날 이후 그는 손때 묻은 미트를 쥘 수 없었고 푸른 잔디와 흙먼지 가득한 그라운드를 밟을 수도 없었다.

네티즌들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관련 뉴스에 “당신이 없는 그라운드. 9년을 기다렸습니다. 당신의 야구에 대한 열정을 팬들은 사랑합니다”라는 댓글을 올렸다.

회사원 여두현(32)씨는 “최희섭은 메이저리그에서 사고를 당했지만 서둘러 응급 치료를 받고 병원에 후송돼 현재 선수생활에 지장이 없다”며 우리의 열악한 응급 대처 상황을 꼬집었다. 그의 빈소는 서울 상일동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9일 오전이다.

정승훈 김경택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