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무차별적 서양화 경계해야죠”

입력 2010-02-07 17:40


클래식 전공자로 국립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 맡은 조정수씨

오늘날 국악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조정수 국립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는 이 질문에 대한 키를 쥐고 있는 사람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 나라를 대표하는 국악연주단체다. 이곳의 정체성은 국악이 갈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와 같다.



조정수 지휘자는 엄밀히 말하면 국악인이 아니다. 그는 벨기에 브뤠셀 왕립 음악원, 프랑스 파리 말메종 국립음악원에서 오케스트라 지휘, 합창 지휘, 관현악법 작곡 등을 전공한 클래식 음악인이다. 유럽 여러 곳에서 클래식 지휘를 했음은 물론이다.

황병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은 이전부터 객원지휘자 등으로 인연을 맺어온 조정수 지휘자를 지난해 발탁했고 그는 11월부터 상임지휘자가 됐다. 황 예술감독이 평소 국악과 서양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을 통해 국악의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조정수 지휘자를 영입한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다.

최근 서울 장충단길 국립극장에서 만난 조정수 지휘자는 “오늘날 국악은 이 시대 한국 사람들의 정서를 담아내야 한다. 그래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소통은 대중과의 타협이 아니다. “우리 음악이 무차별적으로 서양화되고 있습니다. 국악단체들이 영화음악, 대중음악, 퓨전음악을 지향해요. 가야금으로 굳이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해야 하나요. 이런 것이 대중에게 순간적인 만족이나 기쁨은 줄 수 있겠지만 깊이 있는 예술적인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고 봅니다.”

그가 지향하는 지점은 한국적인 정서와 음색을 유지하면서 고급스러운 레퍼토리를 개발하는 것이다. 헝가리 현대음악의 창시자인 바르톡(1881∼1945)이 각 지방 민요를 차용해 작품에 녹여 냈듯이 우리 정서를 담은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2∼3년 하면 더 할 레퍼토리가 없다고 생각하니 음악 하는 사람들이 국악에 관심을 안 갖는 거 같습니다. 반대로 클래식은 바흐부터 스크라빈, 라벨 등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공부해도 끝이 없을 정도로 많지요. 열심히 노력해서 200∼300곡 정도를 만들면 경쟁력을 갖추는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음악을 담아내는 악기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그는 “민족의 정서를 표현하는 악기여야 한다”고 면서 특별히 제한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악기라고 하는 태평소, 당피리, 향피리, 대금, 해금 등도 사실 중국에서 넘어온 악기입니다. 그럼 바이올린이나 첼로도 수백 년이 지나면 우리 악기가 되는 건가 하는 딜레마가 생겨요. 악기는 음악을 만드는 재료일 뿐 그걸로 국악과 양악을 나누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조정수 지휘자는 정오의 음악회를 통해 국악의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국악 연주를 하면 보통 연주자 가족이나 학생들이 오는데 정오의 음악회에는 불특정 다수가 옵니다. 클래식 지휘를 많이 해봐서 아는데 반응이 그거 이상이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올해 큰 변화 과정에 있다. 무엇보다 오디션을 통해 단원의 경쟁력을 키우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단원들의 앙상블 능력은 최고라고 봅니다. 하지만 개인기량은 보완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개인기량은 연습하면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앞으로 몇 배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면 객석에서 관객이 알아줄 거라고 믿습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