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눈먼 예술은 패망의 지름길”
입력 2010-02-07 17:46
아라리오 갤러리 첫 ‘전속 작가전’
올해 창립 21주년을 맞은 아라리오 갤러리가 전속작가들을 한데 모아 소개하는 ‘아티스츠 위드 아라리오’(ARTISTS with ARARIO)전을 연다. 그동안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전이나 전속 작가의 개인전만을 열어온 아라리오 갤러리의 첫 번째 전속작가 그룹전이다.
2005년부터 전속작가제를 운영해 온 아라리오 갤러리는 주로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작품 제작과 해외 미술계 진출 등을 돕고 있으며 2006년에는 제주도 하도리에 전속작가 작업실과 생활공간을 따로 마련해 창작활동을 지원해 오고 있다.
‘고흐’ ‘마릴린 먼로’ 등 극사실 초상화로 세계 미술품 경매와 국제 아트페어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강형구와 브릿팝 밴드 ‘킨’의 앨범표지작업으로 유명한 사진조각가 권오상,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여한 이형구 등 30여명이 현재 아라리오의 전속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아라리오의 대표 작가 강형구(58)씨는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요즘의 미술시장과 화랑의 역할 등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블루칩 작가’로 부상한 그는 몇 년 전 뜨거운 미술시장에 편승한 작가들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잘 팔린다고 마구 그려댔던 작가들, 지금 다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옥션에서 가격을 부풀린 작가들도 지금 어떻게 됐나요? 작품 가격이 얼마인지, 판매에만 신경을 쓴다면 그건 패망의 지름길입니다.”
대법관 출신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앙대 미대를 진학한 강씨는 주로 초대형 자화상을 그려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이 그의 작품을 알아보기 전까지 한 점도 팔리지 않았다. 그러나 한 길만 꾸준히 걸어온 결과 20여년 만에 인기작가가 됐다. 루이비통 회장 등 국내외 재력가들이 초상화를 주문하지만 상업성에 휘둘리기 싫다며 거절하고 있다고.
1980년대 서울 동숭동에서 화랑을 운영한 적이 있는 그는 “제 초상화만 팔고 있었으니 망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그렇지만 작가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기다려줄 줄 아는 갤러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화상을 그리는 것은 의사가 자신의 신체를 수술하는 것과 같다”면서 “하지만 새 작품에 대한 열정은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내년에 싱가포르에서 개인전을 여는 그는 “앞으로 ‘아바타’처럼 특수 안경을 쓰고 볼 수 있는 3D 작품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9일부터 시작해 서울에서는 내달 30일, 천안에서는 내달 21일까지 계속된다. 소격동 아라리오 서울(02-723-6191)에서는 강형구를 비롯해 사물과 공간을 통해 내러티브를 만드는 공시네, 2008년 파리 루이비통 전에 참여한 정수진, 추억의 수집품을 저장하는 이진용 등의 작품 20여점이 소개된다,
아라리오 천안(041-551-5100)에서는 그라인더로 형태의 움직임을 전달하는 박영근, 흑연으로 몬스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승애, 견고한 나무조각 인형 작품의 김재환, 토끼 작가 김한나, 다양한 매체로 글로벌리즘을 비판하는 인도 작가 탈루 L,N, 필리핀의 굴곡진 사회와 역사를 작품에 반영하는 슬리 드 차베즈 등의 작품 30여점을 선보인다.
글·사진=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