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믿지마’ 여행자보험… 제대로 된 설명없이 판매

입력 2010-02-05 18:48


지난해 11월 20일 하나투어 패키지 상품을 구입해 사이판에 여행을 갔던 박재형씨는 현지에서 발생한 총기 난동사건으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박씨는 여행 상품에 포함된 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에 치료비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받은 보험금은 300만원이 전부였다. 지금까지 쓴 1700여만원을 포함해 5000여만원이 들어갈 치료비에 턱없이 모자라는 액수다. 박씨는 “여행사가 상해 보상한도가 가장 낮은 보험에 가입한 걸 나중에 알았다”면서 “여행자보험이 의무가입 조항이라는 얘기만 들었을 뿐 보험 내용을 구체적으로 소개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행자보험 상품이 제대로 된 설명이 없는 불완전 판매가 되면서 소비자만 피해를 보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상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는 불법이지만 이를 단속할 근거는 사실상 없다.

◇불완전판매에 노출된 여행자보험=5일 본보가 하나투어, 넥스투어, 자유여행, 롯데투어 등 국내 10개 종합여행사에 여행자보험 설명 실태를 파악한 결과 모든 여행사에서 불완전 판매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들 여행사는 모두 패키지 여행 상품에 여행자보험을 의무가입 조항으로 포함시켰다. 그러나 사망 시 받을 수 있는 ‘최대 보장금액’만 강조하고 상해 보장 한도, 보장 내용 등 중요 사항은 설명하지 않았다.

하나투어는 “최대 1억원까지 보장되는 보험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라며 “저렴한 비용으로 안전하게 여행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넥스투어도 “보험에 웬만한 건 다 처리되니까 염려 말라”고 했다.

여행사가 패키지 상품에 포함한 보험은 보상 한도가 가장 낮은 저가 상품이 대다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해외여행을 할 때 상해보상 한도가 1000만원 이상인 보험에 가입하는 게 안전하다”면서도 “여행사는 패키지 상품 단가를 낮추기 위해 저렴한 보험 상품을 선택하게 된다”고 말했다.

◇단속의 사각지대, 법규 마련 시급=문제는 이를 단속할 법이 없다는 데 있다. 여행자보험은 보험사가 여행사에 단체 보험 형태로 판매한다. 따라서 보험사는 여행자가 아닌 여행사에게만 설명할 의무가 있다. 금융상품 불완전판매를 감독하는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여행자보험 역시 금융상품이므로 자통법의 불완전판매 제재를 받는다”면서도 “여행사와 고객 사이의 거래는 우리 소관이 아니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공정거래위원회도 “최대 보장 한도만 강조한 것에 대해 과대광고 여부를 따질 수 있어도 여행사에 보험상품 설명 의무까지 강제할 수는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양대 관광학과 이훈 교수는 “여행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법규가 없는 것이 문제”라며 “여행지의 위험 정도에 따라 여행자 보험 보장 한도를 규정하는 등 정부 차원의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