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국가들 재정 위기, 전세계 금융시장 ‘쇼크’
입력 2010-02-05 23:05
세계 금융시장에 국가신용위험(Sovereign Risk)이 새로운 위험으로 부상했다.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투입한 막대한 재정 지출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면서 ‘민간 위기’ 대신 이번엔 ‘정부 위기’가 돌출하고 있는 것이다.
5일 세계 주요 증시와 외환시장에서 주가가 급락하고 달러화 가치가 급등한 것은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확산될 조짐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약한 고리는 그리스다. 이 나라는 2009년 말 현재 정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12.6%, 재정수지(세입-세출) 적자는 GDP의 12.7%에 이른다. ‘적자 경제(deficit economy)’라는 악명까지 얻었다. 최근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그리스 정부가 제출한 재정적자 감축안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승인했지만 그리스 노조가 이에 반발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의 위기감이 촉발됐다. 그리스와 함께 ‘약한 고리’로 꼽혔던 포르투갈과 스페인 등 다른 국가로도 위기가 전염되는 양상이다.
과거에도 열악했던 이들 국가의 재정 건전성은 2008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더욱 악화됐다. 그리스의 경우 2008년 재정수지 적자가 GDP의 7.7%였지만 1년 후인 지난해 말에는 12.7%로 껑충 뛰었다.
한국은행 이흥모 해외조사실장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민간 금융기관의 부실이었다면 이제는 막대한 경기 부양 지출에 따른 정부의 신용 위험이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정적자뿐 아니라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에 허덕이는 이들 국가의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것이 프랑스 독일 등 유로 지역 선진국 금융회사들이다. 여기서 국제 금융시장의 공포감(패닉)이 시작된다. 그리스 등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면 유럽 지역 은행들까지도 동반 부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감으로 투자자들이 주식과 원자재 등 위험자산을 내던지고 안전자산인 달러화로 몰리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가 국가부도 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현재로선 우세하다. 한은 이 실장은 “그리스가 부도날 경우 유로화 단일 통화권의 신뢰도 추락에 따라 유로 지역의 정치외교 위기로 비화되는 만큼 독일이나 프랑스가 주축이 돼 구제금융을 제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증권 허재환 연구원도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지원을 약속하는 등 최악의 사태는 가능성이 낮지만 이들 국가의 재정 부실이 워낙 심각해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49.30포인트(3.05%) 내린 1567.12로 장을 마쳐 두바이 쇼크로 4.69% 떨어졌던 지난해 11월 27일 이래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환율은 19.0원 오른 1169.9원에 마감, 지난해 12월 29일(1171.2원)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일본 닛케이지수가 2.89%, 대만 가권지수가 4.3% 내리는 등 아시아 증시도 급락했다. 전날에는 프랑스 CAC지수가 2.74%, 독일 닥스지수가 2.44% 하락했고 미국 다우지수는 한때 1만 포인트가 깨지는 등 3.11% 추락했다.
배병우 기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