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정동권] 소주 담합 ‘과징금 할인’ 유감

입력 2010-02-05 18:23

“엄마, 아빠 간 이견이 있으면 사전에 조율해야지 애꿎은 아이에게 화풀이하는 부모를 누가 믿겠나.”

공정거래위원회가 11개 소주회사의 출고가격 담합에 대해 27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자 소주 업계 한 임원이 내뱉은 볼멘소리였다. 엄마, 아빠는 공정위와 국세청, 아이는 소주회사를 일컫는 표현이었다. 업계의 눈으로는 이번 과징금 처분이 ‘아이’격인 업계 자신의 잘못이기보다는 ‘부모’인 감독당국 간 의견충돌의 결과로 이해한 셈이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국세청과 공정위, 주류업계 간 묘한 ‘가족관계’가 얽혀 있다. 우선 소주가격을 승인하는 주세법상 권한을 쥔 ‘아빠’ 국세청과 ‘엄마’ 공정위 간의 관할권 문제다. 제조원가를 감안해 출고가격을 올릴 필요성이 있는지는 1차적으로 아빠의 판단과 결정에 달렸지만 일단 오른 가격이 시장의 가격결정력을 무시하지 않았는지 여부는 엄마의 감시권한이기 때문이다.

소주 업계는 그동안 엄마보다 아빠 눈치를 많이 봐왔다. 이번 공정위 조사내용 중에서도 2008년 3월 말부터 소주회사 사장단 모임인 ‘천우회’를 통해 소주가격 인상방안을 논의하면서 “국세청을 설득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업계에선 심지어 “천우회는 국세청의 주세사무처리규정에 따라 주세 보전을 위해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취지의 모임”이라며 “골프 라운딩이 끝난 후 각사 사장들이 주전자에 10개사 소주를 모아서 마시며 지나가는 말로 소주 값 얘기를 한 것을 공정위가 담합증거로 채택한 것”이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이런 업계의 항변 탓인지 소주 담합 과징금은 원안 대비 88%나 깎였다. 지난해 말 LPG 담합에 대한 과징금이 원안(1조3012억원) 대비 절반가량인 6689억원으로 줄어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큰 폭이다.

물론 심사보고서와 최종 전원회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업종의 담합에선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던 공정위가 소주 담합 판정에서 유독 높은 디스카운트를 적용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정동권 경제부 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