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對美 관계개선 장애물 치우기

입력 2010-02-05 23:12

북한이 대북인권운동가인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박(한국명 박동훈·29)씨를 조기에 석방키로 결정한 것은 북·미관계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3월 북·중 국경지대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취재하다가 북한 군인에 억류됐던 미 커런트TV 소속 여기자 2명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끝에 141일 만에 풀려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비슷한 지역에서 국경을 침범한 여기자들에게는 조선민족적대죄와 비법국경출입죄를 적용해 12년의 노동교화형까지 선고한 반면, 박씨는 간단한 기자회견 절차만 거친 뒤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박씨를 신속히 석방키로 한 것은 무엇보다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북·미관계 개선에 장애물이 될 수 있는 이 문제를 조기에 털고 가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5일 “6자회담 재개와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논의에 앞서 걸림돌을 제거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미 간 뉴욕 채널이 활발히 가동되고 있는 점도 박씨의 조기 석방 결정을 이끌어낸 배경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의 회견을 통해 박씨에게 사실상 반성문을 쓰도록 하고 이를 공개한 것도 이례적이다. 박씨는 “나에게 성경책을 돌려줬고 평양시에 있는 봉수교회에서 진행된 예배의식에 참가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렸다. 서방에서 선전한 것과는 달리 조선에서 신앙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통신은 주장했다. 박씨는 또 “정말 충격을 받았고 당황하였으며 창피를 느꼈다. 이곳 사람들은 인권을 존중하고 나를 사랑해주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여기자들과 똑같은 죄를 저지른 박씨를 풀어주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성을 담은 기자회견을 통해 석방의 명분도 확보하고,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입북한 박씨가 반성했다고 발표함으로써 북한에 아무런 인권문제가 없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효과도 노렸다는 설명이다.

북한은 또 박씨의 석방을 질질 끌수록 국제사회로부터 압박이 가중될 것이라는 점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인권단체들은 이달 하순 서울에서 수전 솔티 미 디펜스포럼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박씨 석방을 위한 대규모 집회를 열 계획이었다. 박씨는 조만간 판문점이나 북·중 국경에서 미국 측에 신병이 인도될 것으로 예상된다.

안의근 기자 pr4p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