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호 목사 부부 이야기… 아픈 과거 위로하며 서로 든든한 버팀목
입력 2010-02-05 17:40
기흥지구촌교회 김순정(55·사진오른쪽) 사모는 식당 봉사 등 교회 내 궂은일을 앞장서서 하면서도 늘 미소를 잃지 않는다. 잘 나가던 직장생활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잘 나가던 대형교회 부목사를 그만두고 늦은 나이에 교회 개척을 한다고 했을 때도 김 사모는 늘 안 목사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두 사람은 군대에서 만났다. 안 목사는 사병(병장), 김 사모는 간호장교(중위)였다.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근무하던 두 사람은 안 병장이 인도하던 성경공부에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갔다.
그러다 안 병장이 제대 3일을 남겨놓고 김 중위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누구냐는 질문에 그는 “안용호” 석자를 말했다. 평상시에도 농담을 잘하던 안 병장인지라 김 중위는 “진짜 누구냐”고 캐물었다.
안 병장은 자신의 과거를 털어놨다. 그는 초등학교 내내 아버지의 끔찍한 어머니 폭행 장면을 목격했을 만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결국 부모는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혼하고 말았다. 두 동생과 할머니를 떠안게 된 그는 졸지에 소년가장이 됐다.
그에게 ‘결혼=불행’을 의미했다. 그가 군 입대와 함께 2년간 작정 기도를 했던 것도 자신의 부모와 같은 가정이 안 되기 위해서는 예수를 잘 믿는 자매를 만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 병장의 프러포즈를 받고 김 중위는 그날 밤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너무 좋아서. 화목한 가정이 목표였던 두 사람이 결혼을 늦출 이유가 없었다. 김 중위는 아직 3년이나 군복무 기간이 남았지만 둘은 안 병장이 제대하던 그해 가을 결혼식을 올렸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결혼식 보름 전에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군대에 비상사태가 나면서 결혼이 연기될 뻔하기도 했다. 이듬해 봄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하면서 군대는 또 한번 전시체제에 돌입했다. 당시 임신 7개월의 몸을 헬기에 실은 채 김 중위는 광주로 발령을 받았다. 제대하기까지 2년 반 동안 꼼짝없는 주말부부 신세가 된 것이다.
그 이후 둘은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다. 안 목사는 “내 인생 최고의 격려자”라며 김 사모의 손을 꼭 잡았다.
용인=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