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소녀 가장돕기] 우리꿈은 엔지니어·축구선수
입력 2010-02-05 17:05
“고생하시는 할머니 모습을 보면 하루빨리 돈을 벌어 편히 모시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경기도 수원시에 사는 신경훈(14·삼일중1) 승훈(13·연무초6)군 형제는 자신들을 위해 애쓰는 할머니 박모(72)씨를 편히 모시는 게 제일 큰 소원이다.
경훈군 형제는 각각 세 살, 두 살 때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아버지(46)가 사업에 실패한 뒤 가정불화로 어머니(36)와 이혼하게 되면서 할머니가 부모 역할을 맡게 됐다. 당시 잇따른 사업 실패로 생활능력이 없던 아버지는 형제를 안양의 한 보육시설에 맡겼다. 혼자 수원에 살고 계시던 할머니가 아버지를 설득해 경훈이만 겨우 데려왔다. 동생은 데려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할머니 홑몸 건사하기도 힘든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승훈이는 수원의 보육시설에 있다가 학교에 들어갈 무렵인 일곱 살이 돼서야 찾아올 수 있었다.
지방 사범대를 나온 경훈군의 아버지는 영어학원 강사를 하다 동업으로 학원을 차렸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혼까지 겹치자 실의에 빠진 아버지는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지금은 거동을 못할 정도로 악화돼 지방에서 요양 중이다. 어머니는 이혼 후 소식이 끊긴 지 오래다. 지금은 형제의 기억에 어머니는 없다고 한다.
아들과 며느리를 대신해 수원의 월세방을 옮겨 다니는 할머니의 고생은 말도 못하게 심했다. 어린 형제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돈벌이는 엄두도 못 낼 형편이었다. 주변의 도움으로 근근이 지내왔으나 사정은 점점 나빠졌다.
할머니의 수입은 정부에서 주는 50만원 남짓한 게 전부다. 현재 살고 있는 집도 보증금 300만원에 20만원씩 월세를 내고 있다. 월세를 여러 달째 못 내는 바람에 보증금도 다 제하고 없는 상태다.
할머니는 수년째 여름철이면 인근 수원 장안공원에 나가 아이스크림이나 커피를 파는 행상을 하고 있다. 생활비에 보탤까 싶어하는 일이지만 이마저 만만치 않다. 단속이 심해 피해 다니려 이리저리 뛰다보면 힘만 들고 수입이 별로 없다. 할머니는 “공공근로 신청도 해봤으나 매번 탈락했다”면서 “이번에는 구청을 찾아가 통사정이라도 해봐야겠다”고 말했다.
경훈군은 공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자동차나 컴퓨터 기술을 배워 일찍 돈을 벌겠다는 각오다. 할머니의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서다. 승훈군은 수원이 고향인 프리미어리거 박지성 같은 축구선수가 되는 게 장래희망이다. 축구부가 있는 중학교에 진학해 축구를 한번 제대로 배워봤으면 하는 꿈을 꾸고 있다.
수원=김도영 기자 do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