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거장들을 현실 세계로 불러 내다

입력 2010-02-05 18:01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중앙북스

“나를 창조한 멜빌은 ‘슬픔을 아는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이다’라고 했지요. 삶의 깊이를 느껴보십시오. 거기에는 슬픔과 고뇌가 있을 뿐입니다”(‘모비딕’의 주인공 ‘에이헤브’)

“멜빌은 자신이 읽던 책에 ‘나는 머리만 있는 주피터보다는 마음만 있는 바보가 되겠다’고 적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자유없는 사랑은 무의미하다고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사랑없는 자유는 또 무슨 의미가 있나요?”(장영희 교수)

1861년 발간된 허먼 멜빌의 대표작 ‘모비딕’의 피쿼드호 선장 에이헤브와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9년 생을 마감한 장영희 교수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대담을 나눴다.

장 교수 뿐 아니라 소설가 복거일 최수철, 평론가 김윤식, 시인 장석주 등 국내 문인, 학자 25명이 저마다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고전 작품의 주인공과 작가를 가상 인터뷰했다.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중앙북스)를 통해서다. 책은 대산문화재단이 발행하는 월간 문예지 ‘대산문화’에 연재된 글을 모은 것이다.

필자들은 각자의 문학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작가나 학자를 현실 세계로 불러냈다.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모비딕’을 읽고, 이에 대한 박사 논문을 썼다는 장 교수는 ‘에이헤브’에게 “왜 그토록 필사적으로 흰 고래를 쫓았는지 말해달라”며 작품의 주제를 묻는다. 이에 대해 ‘에이헤브’, 정확히 말하면 ‘장영희가 해석한 에이헤브’는 “그것은 나의 인간적인 도전이다. 나는 신에 대해 분노한다. 그 기막힌 불공평함에 대해서”라고 답한다.

서강대 국문과 교수이자 시인인 김승희는 자신이 박사 논문을 썼던 이상(1910∼1937)을, 소설가 정찬은 프란츠 카프카(1883∼1942)를 만나 각각의 삶과 사랑에 대해 묻는다.

“당신의 가슴 속으로 가장 깊이 들어온 여자는 펠리체 바우어라고 생각한다. 그녀를 어떻게 만났는가?”(정찬)

“1912년 8월13일 늦은 저녁 막스 브로트의 집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내가 펠리체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녀의 발랄한 성격 때문이었다. 타인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태도와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모습은 참으로 놀라웠다.”(카프카)

가상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하는 만큼 필자들은 기존의 연구에서는 볼 수 없던 작가의 사생활과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의 이면에 대해서도 상상력을 펼친다.

현대를 살아가는 필자에 의해 새로 태어난 작가들은 오늘날의 현실 문제를 논하고 해답을 제시하며, 때로는 상처를 고백하기도 한다. 소설가 복거일은 탄생 100주년을 맞은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1903∼1950)과 인터뷰를 통해 “중요한 것은 정직하게 세상을 살피려는 노력입니다. 정직하게 살피면, 전체주의나 다른 해로운 이념에 붙잡힐 위험은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라는 답을 듣는다. 시인 김수영(1921∼1968)은 평론가 김명인의 입을 통해 자신을 “실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외적 실천을 두려워했던 형편없는 작가”라고 규정하며 “옹색하고 비겁한 자기학대에다가 양심이라는 이름을 붙여 사기를 쳤다”고 자조하기도 한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