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여학생’ 289명 감격의 졸업장

입력 2010-02-04 19:10


“배우지 못했던 한과 설움을 졸업식과 함께 훌훌 털어버리고 남은 인생을 즐겁게 살아갈 겁니다.”

산업화와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1960년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배움의 열망을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었던 ‘부산 아지매’들이 감격의 졸업장을 받고 환하게 웃었다.

부산 장림동 부경보건고교 부설 성인여자중·고교(교장 권성태)는 4일 졸업식을 갖고 30∼70대 여성 289명(중학생 158명, 고교생 131명)에게 졸업장을 수여했다.

졸업식장인 5층 강당 입구에 걸린 ‘희망은 강한 용기이며, 새로운 의지이다’란 현수막이 다시 한번 졸업생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고교를 졸업하는 맏언니 김만애(78) 할머니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생들 공부시키느라 배움의 기회를 놓쳤다”며 “여생을 계속 배우는 자세로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배움에 한이 맺혔던 김 할머니는 학우들로부터 “가장 성실했던 학생”이란 평가를 받았다.

졸업식장에는 갖가지 애틋한 사연이 소개되면서 참석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유방암 항암치료를 하면서도 끝까지 학업을 포기하지 않은 김종례(43)씨를 비롯해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남편과 뇌졸중으로 쓰러진 시아버지를 모시며 1남2녀 자녀들을 모두 대학까지 보낸 뒤 학업을 마친 신순화(65)씨, 초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치고 중·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는 김순화(65)씨 등의 사연이 소개되자 참석자들의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성인여자중·고교는 1년 3학기제로 운영돼 2년 만에 중·고교 과정을 마친다. 중학교는 100% 무상이고, 고교는 일반고교에 비해 학비가 30% 정도 저렴하다. 학력이 인정되기 때문에 고교과정을 마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중학교는 공통과정이고, 고교는 인문교육과정인 사이버정보과와 미용예술과, 요양보호사 과정 등이 개설돼 있다.

서민교 교사는 “역경을 극복하고 빛나는 졸업장을 받은 이들의 장한 모습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이웃에게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