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법률상담소 53년간 상담 100만건 살펴보니… 부부갈등 변천사, 사회상 닮았네
입력 2010-02-04 18:58
“남편은 가부장적이다. 뭔가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면 ‘어떻게 감히 여자가 남자에게 명령하느냐. 우리 엄마가 아버지한테 한 것 못 봤느냐’라고 말한다. 남편은 외도까지 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벼룩이라도 수컷으로 태어나고 싶다.”(1960년대 초반 상담 사례)
“남편은 초고속 승진을 하며 돈을 벌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퇴직했고 사업이 잘 되지 않자 나를 폭행했다. 남편이 돈이라도 벌어올 때는 참을 수 있었는데 종일 집에서 술만 마시니 견디기 어렵다.”(2000년대 초반 상담 사례)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53년간 접수된 이혼상담 사례에는 한국사회의 시대별 특성이 나타나 있다. 가정법률상담소는 1956년 창립 후 지난해 말까지 서울 여의도 본부 상담소의 상담 건수가 100만건을 넘었다고 4일 밝혔다. 접수된 고민은 이혼 상담이 44.1%로 가장 많았고 부부갈등 상담 20.7% 등이었다.
50∼60년대의 상담 사례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를 반영했다. 남성들은 대화 단절, 성격 차이 등 추상적인 이유로 이혼을 원했지만 여성들은 남편의 부정이라는 분명한 이유로 이혼을 요구했다.
70년대에는 부부 갈등 상담이 50∼60년대보다 약 4배 늘었다.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가족의 축이 부모 중심에서 부부 중심으로 변했지만 남성은 여전히 부모와의 관계를 중시해 부부간 갈등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시기부터 여성들도 성격 차이 등 추상적인 이유를 들어 이혼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80년대에는 여성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시기 이혼상담 건수는 70년대에 비해 2.8배 증가했다. 이혼상담을 한 여성의 비율도 70년대보다 약 5% 증가했다.
90년대에는 이혼상담을 요청한 사람 중 여성 비율이 80%를 넘었다.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여성의 증가로 이혼율이 높아지자 이혼은 단순한 가정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의 상담 사례는 90년대 외환위기를 대변했다. 경제적 갈등으로 이혼을 상담하는 사례가 많았다. 채권채무 관련 상담도 90년대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했다. 경제력을 잃은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홀대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