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김명호] 폭스뉴스와 신뢰도

입력 2010-02-04 18:19


지난달 27일 버락 오바마 미국 통령이 국정연설에서 미국 경제상황을 설명하면서 “앞으로 5년 동안 수출을 배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케이블뉴스 방송인 폭스뉴스의 시사토크 프로그램 진행자 글렌 벡이 이 말을 물고 늘어졌다. 그는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칠판을 갖다놓고 이 공언을 한심스럽다는 듯이 몰아붙였다. “대통령 당신, 뭘로 미국이 수출을 배로 늘리는데? 중국의 저가 수출 상품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는데? 도대체 이게 가능하다고?”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연설 내용도 우둔하다고 했다. 메시지 요지는 ‘대통령이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고 있다’였다. 그는 지난해 7월 TV에서 오바마를 ‘인종주의자’라고 독설을 퍼부은 적도 있다.

최근 폭스뉴스의 뉴스시간에 유난히 반복돼 강조됐던 장면이 있다. 보수성향의 사무엘 알리토 대법관이 오바마 코앞에서 국정연설을 들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으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장면이다. 당시 오바마는 기업들의 무제한 선거 지원을 허용한 대법원 판결을 강력히 비판하던 중이었다. 폭스뉴스는 알리토가 고개를 흔들며 “사실이 아닌데(not true)”라고 말하는 입 모양을 클로즈업해 하루 종일 내보냈다. 시청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대통령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폭스뉴스가 극도로 보수적이고, 정파적이라는 점은 미국인들에게도 논란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분명하다. 오바마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해 ‘방향 정해놓고 때리는’ 보도로 일관한다. 이쯤되면 보수층 대변 수준이 아니라, ‘폭스뉴스가 오바마 반대파를 이끈다’는 표현이 맞다.

그런 폭스뉴스가 지난주 한 여론조사 결과 신뢰도 1위에 올랐다. 미국인 49%가 믿는다고 답변했다. 2위인 CNN(39%)을 멀찌감치 따돌린 것이다. 시청률이 다른 뉴스를 앞서기도 한 것은 좀 됐지만, 신뢰도 조사에서 가장 앞선 것은 처음이다. 폭스뉴스는 신이 났다. 그 다음날 워싱턴포스트 전면 광고를 통해 ‘우리는 보도하고, 당신이 결정한다(We Report, You Decide)’ ‘공정하고 균형 잡힌(Fair and Balanced)’ 구호로 신뢰도 1위를 한껏 홍보했다. 이렇게 당파적이고 정치적 편향성이 심한 뉴스방송이 신뢰도 1위라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알고 있는 몇몇 미국인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다. “나도 이해가 안 간다. 그것이 지금 평균 미국인의 민도(民度)라고 생각할 수밖에.” 대답을 준 사람은 50대 여성으로 열렬한 오바마 지지자이다. 그래서 공화당 성향의 40대 남성에게 물어봤더니 “여론조사 결과 미국이 잘못 가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인데 당연한 결과 아닌가”고 되물었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답변이 완전히 갈린다.

폭스뉴스 신뢰도 1위 이유는 보도내용을 단순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있다. 거창하고 복잡한 오바마의 건강보험 개혁에 대해 ‘우리 호주머니 돈을 빼내 남에게 주려는 나쁜 행위’라고 한마디로 규정한다. 또 권력에 대한 난타로 보통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게다가 흑인 대통령 이후 미국 사회의 주류인 백인 중산층이 폭스뉴스를 매개체로 결집하고 있다는 설명은 꽤 설득력 있다. 자신의 생각과 같은 논조이면 뉴스 신뢰도가 높아진다는 분석은 많다. 이 같은 현상들이 어우러져 신뢰도 제고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폭스뉴스 신뢰도 1위 현상은 두 개의 물음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는 ‘자사(自社) 의견과 저널리즘의 경계가 불분명해진 상황에서, 이것을 균형(Fair and Balanced)이라고 주장하면, 뉴스 소비자는 혼란스러워진다. 결국 민주주의는 퇴보하는 것 아닌가’이다. 다양한 해석과 가능성이 부정되고, 견제와 균형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권력에 대한 비판만 있으면 언론 신뢰도는 높아지는가’이다. 언론의 기본 사명 중 으뜸이기 때문이다.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은, 상충되지만 ‘그렇다’이다.

어지러운 한국의 정치와 언론 현실,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겹쳐지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폭스뉴스 1위 현상이다.

워싱턴=김명호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