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주은] 원하는 것과 두려운 것

입력 2010-02-04 17:58


어떤 사람은 금융 재테크에 재주가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부동산 재테크에 소질을 보인다. 내 경우는 두 분야 모두 적성에 맞지 않고, 심지어는 운도 전혀 따르지 않는다.

몇 해 전에 처음으로 사봤던 은행 투자 상품이 한때 왕창 마이너스로 떨어져서 은근 마음고생을 했었다. 빠졌다가 들어왔다가 하는 기복을 어느 정도 즐길 줄 알아야 투자도 가능한데, 나는 선천적으로 강심장이 못되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내게 어울리지도 않는 재테크에는 기대도 하지 않고 관심도 쏟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하고는 은행에 갔다.

“다행히 원금 손실은 없으시네요.” 해지 신청을 받으며 상담 창구의 은행원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내겐 돈이 아니라 마음의 손실이 컸다. 묵직하게 불안하던 그 순간들을 전부 계산에 넣자면, 즐거워야 할 내 인생 전체로 볼 때 이미 엄청나게 잃은 셈이었다. 상실감을 되씹고 있는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냥하고 말도 조분하게 잘하는, 아마도 최우수 사원일 것 같은 그 은행원은 어느 새 새로운 투자 상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무엇엔가 빠져든 듯, 은행 오기 직전에 했었던 결심은 어디로 날려버린 채, 새 상품에 기꺼이 서명을 하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멍해져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도저히 나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돼. 끝내러 갔다가 다시 시작하고 오다니…” 어느 누구의 강요도 없었는데 말이다.

불현듯 몇 해 전에 상영됐던 우리나라 영화 ‘범죄의 재구성’의 마지막 명대사가 떠올랐다. “상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상대가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 그 두 가지만 파악하면 상대방과의 모든 게임은 이미 끝난 것과 다름없단다. 그러니까 그 친절한 은행원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게임을 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고 은행 문을 나가면 그녀가 지는 것이고, 행여 미끼에 걸려들게 되면 그녀가 이기는 게임이었다.

그녀는 단번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또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나 자신도 확실히 알지 못했던 것들을 읽어냈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 두려운 것은 이미 가진 원금을 잃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원하는 것은 표면적인 것과 심층적인 것이 달랐던 모양이다. 겉으로는 손을 떼고 싶다고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다른 현명한 여자들처럼 재테크라도 하며 산다는 뿌듯한 정신적 만족감을 누려보고 싶었는지도….

사람의 마음은 더 얻고자 하는 욕심이 있기 때문에 잃을 게 두려워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원하는 것과 두려운 것이 얽혀있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쉬운 게임이 아니다.

그게 바로 탐욕이라는 것이고, 결국에는 매번 스스로 마음고생하게 만드는 각자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세상일에 무심무욕한 사람이 강하다는 말에 새삼 공감해본다.

이주은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