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허 일병 26년 恨 푼 1심 판결

입력 2010-02-04 17:58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망과 관련한 법원의 1심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중앙지법은 군이 26년 전 자살로 발표한 허 일병의 사인을 타살이라고 판결했다.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소속 부대 군인에 의해 타살된 것으로 보이며, 헌병대가 수사과정에서 사건을 조작·은폐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목격자 증언과 법의학적 소견이 무시됐다”며 항소의사를 밝혀 공은 상급심으로 넘어갔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2년 유족들의 요구로 재조사를 벌여 이 사건을 ‘자살로 조작된 타살’이라고 발표했으나 군 당국이 인정하지 않아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 그리고 1심 판결에도 불구하고 유족 측과 군의 주장이 여전히 극명하게 맞서 있어 어느 한쪽으로 결론내리기엔 다소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게 마련이다. 그동안 군 당국이 자살로 발표한 사건 가운데 타살로 밝혀진 사례는 수두룩하다. 개그맨 김정렬씨 형은 1977년 의무병으로 복무하다 선임병의 구타로 숨졌다. 그런데도 군은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고 조작했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빨리 화장하면 국립묘지에 묻어주고 연금도 받게 해주겠다”며 사건 축소 및 은폐를 시도했다고 한다. 정종철 이병은 1969년 보병부대 전입 한 달 만에 수류탄 폭발사고로 숨졌으나 군은 “군 생활에 적응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유족들 가슴에 못을 박았다. 허울 좋은 군의 명예를 앞세워 대한민국 아들들의 명예를 짓밟는 비도덕적·반인륜적 행위를 서슴지 않은 것이다. 군의 횡포에 수십 년간 한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던 유족들의 고통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군에서 군기사고 축소, 조작, 은폐 사례가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인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대 내 사고는 인사고과에서 감점요인이 돼 지휘관의 군 생명과 직결된다. 특히 사망사고는 옷을 벗을 수도 있는 중대 사건이어서 축소, 조작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국가의 부름을 받아 신성한 국방의무를 이행하다 억울하게 순직한 병사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건 유족이 아닌 군이 앞장서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