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지키기’ 독자가 해보니… “소송을 하든지, 전화를 끊든지”

입력 2010-02-04 17:59


또 전화벨이 울린다. 지난해 5월 이사한 뒤 매주 한 통씩 걸려오던 게 이젠 이틀에 한 번 꼴이다. 6개월째 혹시나 하고 받아보면 어김없이 IPTV나 인터넷전화 가입을 권한다.

김미경(27·여·서울 대림2동)씨는 꼼꼼히 자신의 ‘잘못’을 되짚어봤다. 집을 옮기며 이것저것 사느라 여러 인터넷쇼핑몰에 회원가입을 했다. 그때 개인정보 관리를 잘 못했나? 전화번호를 바꿨다.

“SK브로드밴드 인터넷전화 사용해보세요.” 전화번호 바꾼 지 2주 만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미 당신네 고객이라고 하자 다급히 전화를 끊는다. 하지만 전화는 출근도장 찍듯 매일 계속됐다.

김씨는 이 무렵 국민일보 기사인 개인정보 유출 추적기 ‘동의에 함부로 동의 마세요’(지난해 12월 25일자 And 섹션 13면)를 읽었다. 기사의 조언대로 SK브로드밴드 상담원에게 전화해 “가입할 때 개인정보를 마케팅에 활용토록 동의했다면 철회하고 싶다”고 했다. 상담원은 “동의하지 않았다”고 확인해줬다.

매번 다른 목소리의 전화는 이 회사의 각 대리점에서 걸려오는 듯했다. 이미 고객임을 밝혔는데도, 본사에선 김씨 개인정보를 마케팅에 활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도 전화는 이어졌다. 고객센터 상담원에게 두 차례, 책임자급 직원에게 두 차례 항의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해 말 한국소비자원을 찾아가 SK브로드밴드에 대한 조치를 요구했다. 소비자원은 행정제재 권한이 없다며 방송통신위원회로, 방통위는 공정거래위원회로 가보라고 했다. 공정위에서 들은 답변은 다시 방통위나 소비자원 또는 대한법률구조공단에 가보라는 것이었다. 그는 포기했다.

김씨가 당한 ‘전화 권유’에 현행 법규는 무기력하다. 공정위 소관인 전자상거래법은 수신거부 의사에 반하는 광고행위를 금지하지만 통신판매업자에 한해서다. ‘전화 권유’는 ‘통신판매’에 해당되지 않는다. 방문판매법은 전화 권유가 판매로 이어진 뒤의 소비자 피해를 보호한다. 방통위 소관의 정보통신망법은 ‘전화 권유’를 제외한 이메일·문자메시지·영상파일이 초점이다.

공정위는 논란을 의식해 지난해 7월 ‘수신거부의사에 반해 전화 권유를 해선 안 된다’고 명시한 방문판매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국회가 이 법안을 통과시켜줄 때까지 스팸전화는 공정위 관계자의 ‘자조’ 섞인 조언을 따르는 수밖에 없겠다. “본사에 항의하거나 소송을 거세요. 아니면 그냥 끊어버리시든가.”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