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역사지진’… “임금의 실정에서 비롯된 재앙”

입력 2010-02-04 18:13

‘27일 미시(未時)에 또 지진이 일어나 성 두 군데가 무너지고 고을 건너편 시루바위 반쪽이 무너졌으며 삼수동 중천의 물빛이 흰색으로 변했다가….’

1597년(조선 선조30년) 10월 8일 함경도 관찰사 송언신은 이렇게 지진 발생 상황을 임금에게 보고했다. 조선왕조실록에 구체적 묘사가 담겨 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이 인천에 지진관측소를 세운 1905년 이전의 각종 문헌에 기록된 지진을 ‘역사지진’이라 부른다(관측기록은 국내 기술진이 관측을 시작한 78년부터 남아 있다). 이는 과거 한반도 지진 발생 상황을 파악해 앞으로 발생할 지진을 예측하는 데 활용된다.

대형 역사지진은 1518년 7월 서울, 1597년 10월 함경도 삼수, 1643년 7월 경상도 울산, 1681년 6월 강원도 양양, 1810년 2월 함경도 청진 등에서 발생했다. 모두 규모 6.3 이상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왕명(王命) 출납을 기록한 승정원일기에도 지진 기록이 있다. ‘경상도 감사의 보고에 의하면 울산 동쪽 삼십리에 물이 끓는 탕과 같이 용솟음쳤으며 논밭 여섯 곳이 갈라지고 물이 솟기를 우물과 같았다.’(1643년 7월 24, 25일)

‘함경감사 조윤대의 보고에 의하면 부령 등지에 민가가 무너지고 사람이 압사한 일이 있었다. 압사자 유족에게 휼전(이재민에게 내리는 특혜) 외에도 각별한 보살핌을 주도록 하라.’(1810년 2월 19일)

문헌의 지진 묘사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따라서 ‘성이 무너졌다’ ‘논밭이 갈라졌다’ 등으로 사용된 표현 수위를 분석해 지진 규모 추정치를 환산한다. 부정확하지만 옛 지진을 가늠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제는 밤새 네 차례나 지진이 있었으니 변괴입니다. 음이 성하고 양이 쇠해 일어나는 일입니다. 천하의 이치는 음양(陰陽)과 이기(二氣)가 있을 뿐입니다.’(조선왕조실록 1518년 7월 3일)

옛 사람들은 지진을 음양의 이치가 어긋나거나 임금의 실책에서 비롯된 재앙으로 여겼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