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6.3규모로 경기도 남한산성서 일어난다면… 수도권 건물 10채중 1채 파손

입력 2010-02-04 18:10


소방방재청 지진 시뮬레이션 분석

지난 1일 오전 5시 제주 남동쪽 62㎞ 해역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규모 2.4. 오전 6시42분엔 서귀포 동쪽 59㎞ 해역에서 규모 2.3의 지진이 감지됐다. 작지만 진동은 바다 건너 남부 내륙까지 전달됐다.

소방방재청 정길호 지진방재총괄계장은 출근하자마자 기록을 뒤졌다. 계기지진(기계식 지진계로 관측된 지진) 기록이 있는 1978년 이래 제주도 인근 지진은 모두 48차례. 93년 3월 28일 제주 서쪽 230㎞ 해역의 규모 4.5가 가장 컸다.

오전 11시 정 계장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제주도 지진에 대한 가상 대응훈련을 합시다.” 이례적이다. 박연수 소방방재청장이 직접 비상훈련을 소집했다. 최근 아이티 지진 이후 대응체계 점검 강도가 세졌다. 오후 2시 시작된 훈련은 이튿날 평가회의까지 꼬박 만 하루가 걸렸다.

지난해 한반도에선 60차례 지진이 발생했다. 78년 이후 가장 많았다. 한국은 지진에 얼마나 안전할까? 인구 밀집지역에서 대형지진이 발생한다면 피해규모는? 대응체계는?

규모 6.5 제주도 지진 가상훈련

1일 가상훈련은 진앙지를 서귀포 중앙동, 규모를 6.5로 설정해 진행됐다. 건축물은 중요도에 따라 적용되는 내진설계 기준이 다르다. 정부중앙청사 등 특급 건물이 버틸 수 있어야 할 지진 강도가 규모 6.5다.

방재청이 개발한 지진재해대응시스템에는 지방자치단체별 건축물 수, 각 건물의 내진설계 여부, 인구·지반 정보, 병원·가용병상 수 등이 입력돼 있다. 지자체마다 변동이 생기면 즉시 보고토록 돼 있어 항상 최신 상태가 유지된다.

지진 발생시간은 오후 3시16분으로 했다. 시스템에 가상정보를 입력하자 10여분 만에 전국 피해규모가 스크린에 나타났다. 규모 6∼6.5는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1개의 위력을 지닌다.

가상지진의 진동은 강원도(진도 1∼2)까지 전달됐다. 전남은 진도 4∼5, 전북과 경남은 진도 3의 진동이 전해졌다. 진도 3은 실내에서 건물의 떨림이 느껴지는, 진도 4∼5는 건물이 심하게 흔들려 유리창이 깨지는 강도다.

전국적으로 사망 91명, 부상 1339명, 이재민 1461명이 발생했다. 건물은 전파(全破) 505동, 반파(半破) 795동, 부분파손 1만5263동의 피해가 났다. 지진 강도, 인구 밀집도, 건물 높이, 내진설계 여부 등을 종합해 방재청 시스템의 지진피해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예측한 규모다.

피해는 제주도에 집중돼 있었다. 인적피해는 모두 제주도였다. 내륙은 전남에서만 건물 8동이 부서졌다. 제주도는 전체 건물 14만508동 가운데 1만6555동이 파손됐다.

지진 대응 매뉴얼에 따라 기상청은 지진이 발생하면 방재청 재난종합상황실로 5분 안에 통보해야 한다. 지난해 실제 지진 통보에 소요된 평균 시간은 3분54초였다. 이날 훈련에서 방재청이 지진 통보를 받은 시각은 약 4분 만인 오후 3시20분으로 가정했다. 즉각 방송통신위원회에 재난방송을 요청하고, 국가재난관리시스템(NDSM)을 통해 각 지자체에 지진발생 사실을 전파했다(3시22분).

이어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등에 초기 상황을 보고한 뒤(3시30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비상근무 체계를 가동했다(3시35분). 같은 시각 14개 관계부처와 8개 유관기관에 비상소집령이 하달됐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확보된 예상 피해규모가 자동으로 전국 지자체에 전파됐다. 여기까지 19분이 걸렸다.

규모 6 이상 지진 수도권에서 발생한다면?

한반도에서 대형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은 곳은 어디일까. 큰 지진일수록 지표로 분출될 에너지 축적 기간이 길다. 지진 연구자들은 에너지 축적 기간을 추정해 ‘지진 재현주기’를 계산하고 그 진앙지를 예상해 ‘지진위험도’를 그린다.

이 위험도에 근거해 방재청은 경북 성주와 북한 평양 인근,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부근에서 대형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남한산성 일대는 약 2000년 전인 서기 27년과 89년에 대형지진이 발생했다는 문헌 기록도 남아 있다. 당시 규모는 6.3 정도로 추정된다.

남한산성 지하 10㎞에서 규모 6.3 지진이 발생했다는 가상정보를 방재청 시스템에 입력했다. 10분 뒤 스크린에 시뮬레이션 결과가 떴다. 전국 사망자 1106명, 부상자 2만2630명, 이재민 2만6405명. 건물은 1472동이 전파됐다. 반파 3585동, 부분파손 18만6119동이다. 주로 수도권이 피해 지역이었다. 비슷한 규모의 제주도 가상지진보다 사망 10배, 이재민 18배, 건물파손은 14배 이상 많았다.

경기도는 3만4406명이 사상자나 이재민이 됐다. 건물은 도 전체의 9.32%(8만7652동)가 피해를 입었다. 진앙지 광주시는 전체 건물의 42.7%가 부서졌다. 사상자와 이재민은 5202명. 인접한 성남시는 사상자·이재민이 1만5467명, 건물피해는 전체의 43.08%인 1만6326동이었다.

지역별 지진 충격을 가늠할 건물피해율은 성남·광주에 이어 하남(26.69%) 용인(17.22%) 구리(16.58%) 안양(15.30%) 서울(13.55%) 수원(12.89%) 여주(12.13%) 순이었다.

서울은 사상자·이재민 1만5209명에, 건물 9만1528동 파손. 진앙지가 서울 남동쪽이어서 송파구(인적피해 2284명) 강동구(1784명) 광진구(1197명) 피해가 컸다.

강남구는 인적피해 991명, 건물피해 3380동으로 인구·건물 밀집도에 비해 피해가 작았다. 정 계장은 “고층건물은 반드시 내진설계를 해야 하지만 3층 미만은 의무사항이 아닌데다 오래된 건물이 많다”며 “강남구 피해가 상대적으로 작은 건 고층건물과 새 건물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진 발생 이후 대응조치

제주도 가상지진 대응훈련은 계속 진행됐다. 오후 3시40분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가 소집됐다. 시뮬레이션으로 얻은 지역별 예상 피해규모를 놓고 대책을 수립하는 자리다. 서귀포에 피해가 집중됐다. 제주시청과 제주공항 피해는 미미했다. 시청에 컨트롤타워가 설치되면 외부 지원인력도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드러났다. 제주도의 라이프라인(Lifeline·구명밧줄) 시설들이 얼마나 파손됐는지 정보가 없었다. 라이프라인은 생활필수시설을 뜻한다. 정압소와 도시가스관(가스) 송전탑·송배전 설비(전기) 방송국·기지국(통신) 상하수도관(물) 도로(교통) 등이다.

대책 수립에 필수적인 이 정보가 제주도의 경우 방재청 시스템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돼 있지 않았다. 방재청 관계자는 “라이프라인 정보는 현재 50% 안팎의 지자체만 입력돼 있다”며 “최대한 빨리 모든 지자체 정보를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본부는 곧바로 다섯 가지 후속조치를 시행했다. 먼저 군에 병력 지원을, 다른 지자체들에 구조대 지원을 요청했다. 제주에는 구조·구급대가 34곳, 구조 인력과 장비는 116명과 3559대에 불과하다. 피해를 감당키엔 크게 부족했다.

다음은 부상자 1339명을 위한 진료소 문제. 제주도 병원의 사용 가능한 병상은 413개뿐이었다. 학교 운동장 170곳에 임시 진료소를 설치키로 했다. 방재청이 파악한 제주도 의사는 332명. 보건복지가족부에 의료진 파견도 요청했다.

지진은 화재를 동반한다. 가스시설 정보가 부족해 대형화재 상황을 예측키 어렵다. 일단 제주도 소방차 155대, 소방대원 477명을 피해가 큰 서귀포에 투입키로 했다. 이재민 수용은 큰 문제가 없다. 지진 발생시에는 건물이 아닌 공터에 수용소를 짓는데 제주도는 46곳에 이재민을 1만1515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만약에 대비해 임시 구호세트를 보내고 재해구호기금에서 난방장비를 지원키로 했다.

끝으로 라이프라인 응급복구를 위해 한국가스공사 한국전력 한국전기안전공사 등에 인력 파견을 요청하고, 복구 작업에 해병대를 투입키로 했다. 이런 1차 조치가 끝나면 국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할 차례다. 국민들에게 지진 상황 상보를 알리고,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하고,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중앙재난안전관리위원회도 개최된다.

“1∼2층 건물도 내진설계를”

일반적으로 대형지진의 최종 피해규모는 발생 첫날 확인되는 상황의 10배 정도다. 그만큼 후속 대응이 어렵다. 박 청장은 “지진피해 시뮬레이션의 유무와 정확도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라고 했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지진 구조작업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어디에 매몰자가 많고, 어디에 의료진이 부족한지 알아야 신속히 대처할 것 아닙니까. 우리 프로그램을 아시아 각국에 무상 제공할 계획입니다.”

-고층건물이 더 위험할 것 같은데 아니더군요.

“무너지는 건물의 90%가 3층 이하입니다. 1∼2층짜리도 내진설계를 적용할 때가 됐습니다.”(방재청은 지진재해대책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결국 돈이 문제인가요?

“내진설계비는 공사비의 3∼5%밖에 안 됩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