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디스·판매원 웃다가 병든 사람들… ‘감정노동’
입력 2010-02-04 17:59
앨리 러셀 혹실드/이매진/감정노동
2007년 가수 유니, 탤런트 정다빈의 잇따른 자살소식에 연예계가 들썩였을 때 ‘감정노동’이라는 용어가 이슈로 떠올랐다. 감정을 숨기고 연기해야 하는 연예인은 대표적인 ‘감정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당시 배우 박중훈은 “아버지 상중에 잠깐 씻기 위해 사우나에 갔는데 사람들이 사인을 해 달라, 사진을 같이 찍자며 왔다. 빙긋이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연예인들이 겪게 되는 감정노동의 한 예”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학술적으로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은 배우가 연기를 하듯 원래 감정을 숨긴 채 직업상 다른 얼굴 표정과 몸짓을 하는 것을 말한다. 감정노동자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늘 긴장하며 자기 감정을 관리해야 한다. 이에 근거하면 ‘감정노동’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상사의 잔소리에도 표정을 찡그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분위기에 맞춰서 웃거나 울면서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사회학과 교수인 앨리 러셀 혹실드의 명저 ‘감정노동’은 사적인 전유물로 여겨진 감정을 시장의 영역에서 분석하고 상품 가치로서 조명한 책이다. 또한 감정을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자아를 잃을 위기에 처하는지도 경고한다.
그는 세계 최대 항공사인 델타 항공의 임원과 승무원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벌였다. 또한 노동조합 관계자, 성 문제 치료 전문가, 연수센터 강사 등 다양한 직업의 감정노동자를 관찰했다.
혹실드가 감정의 노동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외무부에서 일하는 부모님 때문이었다. 흑실드의 집에는 외교관들 모임이 잦았는데, 어린 혹실드는 부모님 어깨 너머로 본 각국 외교 사절들의 표정 변화를 유심히 관찰했다. 불가리아 사절이 보일 듯 말 듯하게 웃는 것이나 중국 영사가 눈길을 피하는 것, 프랑스 경제 각료가 오랫동안 악수를 하는 것은 그저 개인적인 메시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실드는 “저들이 외교관인지 연기자인기 분간이 안 됐다”고 회고했다.
업무 영역에서 감정은 목적을 위해 얼마든지 가장되고 변형된다. 하지만 사적인 영역에서도 감정은 거짓된 모습을 보인다. 친구의 생일파티라면 기분이 안 좋아도 명랑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장례식에 간 조문객은 적당히 슬픈 표정을 지으며 절대 웃지 않는다. 이처럼 ‘감정’은 공과 사를 떠나 도구적으로 상황에 맞게 변형돼왔다. 저자는 계급, 위치, 성별로 분류해 감정의 변화를 분석한다.
2007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서비스 산업 종사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백화점 노동자 중 56.2%는 우울증과 스트레스 질환에 시달린다고 한다. 2006년 한국여성연구소가 서울 시내 식당 아줌마 401명을 조사한 결과도 우울하기는 마찬가지다. 반말과 욕설 등 비인간적인 대우에 힘들어하고, 불쾌한 성적 농담에 노출돼 있다. 살기 위해 감정을 파는 사람들. 그러나 궁극은 자아는 잊혀지고 정신은 병들게 된다. 감정 노동에서 온전히 자신을 지키는 법은 무엇일까(1만7000원).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