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 생산·대량 소비’ 쓰레기 넘쳐나는 세상… ‘낭비와 욕망’

입력 2010-02-04 17:49


수전 스트레서/이후/낭비와 욕망

쓰레기는 쓸모가 사라져 버려지는 물건이다.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의 기준은 고정적인 게 아니라 시대와 사회, 개인에 따라 각기 다르다. 과거에는 낡았다고 판단되거나, 더 이상 못쓰게 됐거나, 너무 많아서 남아돌 때 버렸다. 하지만 현대 문명사회에서는 물건을 버리는 이유가 또 있다. ‘쓰기 싫어졌다’는 게 그것이다. 오늘날 쓰레기장에는 싫증이 났다거나 최신 스타일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버려진 멀쩡한 물건들로 넘쳐난다.

수전 스트레서 미국 델라웨어 대학 교수는 물건의 재활용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져 쓰레기가 드물던 시대에서 쓰레기가 대량 배출되는 현대사회로 변천해 온 과정과 원인을 실증적으로 살핀다. 쓰레기의 생산을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고찰하면서 쓰레기가 어떻게 생산되고 있는지를 추적한 것.

20세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쓰레기를 많이 배출하지 않았다. 상인들은 식료품, 가재도구, 세탁 용품 등을 대부분 포장하지 않은 채 쌓아놓고 팔았다. 가정에서도 남은 음식은 끓여서 스프를 만들거나 가축에게 먹였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어딘가에 보관했고, 헌 물건은 가난한 이웃에게 주거나 자녀에게 물려줬다. 낡거나 망가진 물건은 수선을 해서 사용했고, 도저히 고쳐 쓸 수 없을 만큼 낡은 것은 분해해서 부품을 재사용하거나 고물상에게 넘겼다.

1880년대 미국의 행상 업체 ‘노예스’에 고용된 행상들은 집집마다 돌며 잡동사니를 팔았고 가정에서 거둬들인 못 쓰는 물건들을 공장에 납품했다. 공장은 가정 폐기물을 사들여 생산과 제조의 원료로 사용했다. 절약이 몸에 배어 있고, 재활용 시스템이 잘 작동되는 시대였다.

그러나 이런 재활용시스템은 20세기가 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대량생산과 대량 판매가 이뤄지면서 ‘더 많은 물건, 더 많은 쓰레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쓰레기가 늘어나게 된 데는 일회용품의 등장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고 일회용품이 즉시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한번만 쓰고 버리는 문화에 쉽게 젖어들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을 설득하고 변화시킨 것은 마케팅과 광고였다.

1920년대 일회용 생리대를 선보인 킴벌리클락은 일회용 생리대를 가방에 넣고 여행하거나 직장에 나가는 여성의 모습을 광고로 내보내 여성들을 유혹했다. 일회용 생리대가 현대여성을 상징한다는 이미지를 심으려 한 것이었다. 일회용 종이컵 회사는 한번 사용하고 버리는 컵의 위생성을 교육적으로 전파했고 수건 대신 종이 냅킨을 쓰게 하려고 ‘청결’과 ‘건강’ 문제를 끝없이 얘기했다.

‘편리함’과 ‘효용성’도 기업들이 강조한 개념이었다. 일회용품은 주부들을 고된 가사 노동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라는 환상을 불러왔다. ‘유행’이라는 개념의 확산도 소비자들이 물건을 완전히 다 쓰기 전에 새 물건을 사도록 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었다. 1920년대부터 옷은 물론 다양한 사물에 유행의 개념이 확산되면서 ‘닳는 속도’에 따라 구매하던 일상 용품들이 ‘욕망의 속도’에 따라 바꾸는 패션상품으로 변해갔다.

소비자들은 쓰던 물건을 쉽게 버렸고, 이는 대량소비와 쓰레기 양산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소비문화는 끊임없이 자연 자원을 취해서 폐기물을 배출하는 과정을 통해 번성하고 있다. 환경운동의 영향으로 1970년대 이후 재활용과 분리수거가 확산되었지만 쓰레기는 점차 늘어나고 증가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저자는 이런 사실들을 통해 오늘날 현대인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개인의 습관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산업사회의 대량생산 및 대량소비구조와 이를 작동시키려는 기업들의 의도가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대량소비문화가 쓰레기 과잉 사태를 불러온 과정을 들춰내지만 그렇다고 산업화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지구와 자연 자원을 끝까지 살피는 태도에 기초한 새로운 도덕, 새로운 상식, 그리고 노동 가치와 효용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가지고 소비문화를 극복하자고 말할 뿐이다. 쓰레기로 인한 환경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산업사회와 소비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