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허원근 일병, 자살 아닌 타살 국가 9억2000만원 배상해야”

입력 2010-02-03 21:46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망 사건이 타살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부장판사 김흥준)는 3일 허 일병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허 일병의 부모와 형제에게 9억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시신에 대한 법의학적 소견과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증거자료로 볼 때 허 일병은 저항할 수 없는 압력을 받은 상태에서 소속 부대 군인에 의해 타살된 것으로 보인다”며 “헌병대는 수사 과정에서 사건을 조작·은폐했다”고 밝혔다. 당시 헌병대가 사건 현장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탄피 1발을 발견한 것처럼 허위 발표하고 중대본부 요원들을 수사하면서 각종 가혹행위를 한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또 “사고 당일 허 일병은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했으며 당시 대대장과 보안사 간부 등은 자살로 위장하기로 의견을 모은 뒤 구체적 지시를 내렸다”며 “부대원들은 사망 흔적을 지우려 막사 물청소를 하고, 머리에 총상을 입고 이미 숨진 허 일병의 가슴에 추가로 2차례 총을 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원도 화천 육군 7사단에서 복무했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졌다. 당시 군은 헌병대 수사 결과를 토대로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유족들은 군대의 조사 결과에 불복해 20년 가까이 재조사를 요구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2년 재조사를 벌여 “허 일병의 죽음은 자살로 조작된 타살”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국방부 특별조사단은 의문사위의 결론이 나온 뒤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토대로 “허 일병의 죽음은 자살이 맞다”고 주장, 허 일병의 사인을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재판부는 국방부 특조단의 발표에 대해 “군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의지에서 군에 유리한 증거를 확대 평가했지만 조작·은폐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