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北, 흉흉한 민심 잡고 흰 쌀밥 먹이려면
입력 2010-02-03 18:04
지난해 11·30 화폐개혁 이후 북한 사정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는 것 같다. 계획경제 확립을 통한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명분 아래 화폐개혁을 전격 단행했으나 시장 기능이 마비되면서 물가가 폭등하는 등 심각한 후유증에 직면했다는 얘기다. 쌀값은 무려 10배가량 올랐다는 게 정설이다. 함경남도 단천시와 함경북도 청진시를 비롯해 곳곳에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 주민들은 집단으로 항의했고, 한 주민은 보안원의 무기를 빼앗아 보안원에게 총격을 가했다는 전언까지 나왔다. 비록 일부라지만 극도로 폐쇄된 사회에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하는 주민들이 생겼다는 것은 민심이 얼마나 흉흉한지를 의미한다.
화폐개혁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이 해임됐다는 설도 주목된다. 박 부장 해임이 명확하게 확인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 수행자 명단에서 제외되는 등 이상 징후들이 포착돼 화폐개혁 부작용으로 인해 경질됐을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 3남 김정은으로의 후계구도 구축에 차질이 빚어지는 게 아니냐는 전망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일 “인민들이 흰 쌀밥이 아닌 강냉이밥을 먹고 있는 것이 제일 가슴 아프다”고 했다. 지난달 9일에는 북한 주민들에게 흰 쌀밥을 먹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폐개혁 이후 두 번이나 ‘흰 쌀밥’ 운운한 데에는 삶이 더욱 피폐해진 주민들의 동요를 차단하려는 속내가 담겨 있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흰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경제를 회복시키고 싶다는 것이 김 위원장 진심이라면 시장을 더 옥죄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
무력시위도 접어야 한다. 한반도 주변 수역 곳곳을 항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하고 대포를 마구 쏘아대면서 북한 주민들이 강냉이밥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흰 쌀밥을 주려면 궁극적으로 김 위원장이 대가 없는 남북 정상회담에 응하고 6자회담에 복귀해 비핵화의 길을 걷겠다고 결단을 내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