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윤재석] WEF와 WSF

입력 2010-02-03 18:13


“대척 성향의 두 행사가 같은 지향점 향해 고민했던 것은 바람직한 현상”

지난주 국내외 언론은 27∼31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일명 다보스포럼) 소식을 전하느라 분주했다. 29개국 정상을 비롯, 기업인 학자 언론인 등 2500여명이 참석한 제40차 다보스포럼은 ‘더 나은 세계: 다시 생각하고, 다시 디자인하고, 다시 건설하자’를 캐치프레이즈로 글로벌 금융 개혁 등 6개의 주요 의제를 집중 논의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 11월 서울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 회의 의장국 정상 자격으로 28일 단독특별연설을 했다. 그는 세계경제의 불안정성 해소를 위한 글로벌 금융안전망(GFSN) 구축, 기존 G20 합의사항의 철저 이행, 국제 개발격차 해소와 비회원국의 외연확대 및 비즈니스 서밋 개최 등을 제안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가교역할을 했다.

그날 저녁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마련한 ‘한국의 밤 2010’ 행사는 G20의 주역으로 떠오른 대한민국의 위상을 확인한 자리였다. 특히 한식의 세계화를 위한 시식 이벤트는 웰빙 식품에다 예술성까지 가미된 한식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 절호의 기회였다. 이번 포럼에서 나온 주요 의제를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논의하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본 것 역시 한국의 입지를 높여주었다.

글로벌 리더들의 통찰력을 읽을 수 있는 기회라는 찬사와 함께 ‘부자들의 사교클럽’이라는 비아냥을 받는 다보스포럼에서 아이티 지원 논의가 이뤄진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아이티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민간 부문의 직접투자를 포럼 참석자들에게 호소한 것이다. 2008년 강력한 허리케인으로 아이티가 큰 피해를 입은 이후 유엔 아이티 특사로 활동해온 클린턴은 “이번 지진은 아이티 국민들에게 큰 재앙이지만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는 기회이기도 하다”고 강조해 참석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전반적으로 올해 다보스포럼은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신자유주의의 전파자’라는 오명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지난주엔 또 하나의 대규모 국제행사가 있었다. 25∼29일 브라질에서 열린 제10차 세계사회포럼(WSF)이 그것이다. 포르투알레그레와 인근 5개 도시에서 3만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900여개의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 WSF에서도 글로벌 경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WSF 참석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의 새로운 공세에 대비해 반(反)세계화 운동의 결속을 다짐했는가 하면, 거대 기업의 자원 장악과 환경오염을 막아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유엔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처럼 담론이 까칠한 것은 그 태생적 성격 때문이다. WSF는 2001년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인식 아래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이 세계 각국의 진보성향 시민단체 등을 규합,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출범했다. 다보스포럼과 대척의 노선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럼에도 올해 양대 포럼에서 일말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희망적이다. 하긴 WSF의 고정 캐치프레이즈 속 ‘또 다른 세계’와 다보스포럼의 올해 캐치프레이즈 속 ‘더 나은 세계’는 표현만 다를 뿐 궁극적 지향점은 같지 않은가.

다보스포럼이 첫 글로벌 정치인상 수상자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을 선정한 것도 눈에 띈다. 2001년 브라질 금속노조위원장으로 WSF 태동을 이끌었던 룰라 대통령은 WSF에 보낸 메시지에서 “WEF의 대안에 그쳐선 안 되고 인류의 미래를 논의하는 토론의 마당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젠가 WEF와 WSF를 아우른 포럼이 유럽(다보스)과 남미(포르투알레그레)의 중간쯤인 아시아 어딘가에서 열린다면 글로벌 현안을 놓고 더욱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을까.

윤재석 카피리더 jesus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