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짐승만도 못한…”
입력 2010-02-03 18:10
발정기(發情期)가 되면 마주치는 암컷마다 엉덩이에 코를 들이대는 수컷들. 암컷의 체취(體臭)에 홀려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 취향에 맞는 상대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일 것 같은 동물들이 짝짓기 상대를 고름에 인간보다 진지하다. 동물에게도 연애감정이 있다는 말이다. 상대를 고를 때 인간은 우선 용모를 따지는데 비해 동물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인간들은 그 기준을 아직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동물연구가 하타 마사노리(1935∼ )의 주장이다.
본능에 이끌려 하룻밤 사랑을 탐하는 건 인간들이다. 웃통 벗고 근육을 자랑하는 연예인을 짐승남이니 짐승돌이라 부르는 거나,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이 인간들의 욕인 걸 알면 동물들이 화낼 터다. 연애감정뿐이 아니다. 너구리 부부는 암컷이 죽으면 수컷이 비탄(悲歎)에 잠겨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다가 쇠약해져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황혼이혼으로 배우자의 퇴직금까지 나누는 박정한 인간세상을 나무라는 듯하다.
일본 소설가 엔도 슈사쿠(1923∼ )는 프랑스 유학 시절 거의 매일 들르던 공원에서 원숭이와 친해졌다. 동물우리 안에 홀로 갇혀 있는 원숭이에게 일과(日課)처럼 먹이를 주었더니 이 원숭이가 어느 땐가부터 자신을 보면 우리에 달라붙어 입술을 격렬하게 오물거리더란다. 그 의미를 모르는 채로 귀국한 뒤에 동물학자에게 물어보았더니 상대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행위라는 것이었다.
동물들이 인간에게 애정을 품는다면 그것은 친애(親愛)일 것이다. 코끼리가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크고 무거운 앞발을 상대의 팔에 걸치려고 해 기겁케 한다. 수캐가 사람 팔에 매달려 교미하는 흉내를 내는 것은 실은 우정의 표시라고 한다. 개는 또 인간의 가족에서 자신의 서열을 밑에서 두 번째 또는 막내와 동격이라고 생각해 막내를 겁내지 않는다고 한다.
어제 본보 1면에는 가축 전염병 구제역(口蹄疫) 때문에 젖소를 생매장해야 하는 축산농가의 비극이 보도되었다. 길게는 10년 넘게 아침저녁으로 젖을 주물러 우유를 짜며 감정을 나눠온 소들을 어느 날 갑자기 땅에 파묻은 농민들의 충격은 상상을 절(切)한다. 그것도 관청의 지시에 따라 구제역에 걸리지도 않은 멀쩡한 소들을 예방 차원에서 처분한 것이니 죄책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소를 묻은 장소도 축사 근처라 하니 맨정신으로 견딜 만한 일이 아니다. 생매장이라도 면하도록 인간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이 있다면 농민들의 정신적 후유증을 다소나마 줄일 수 있을 텐데.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