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신의 깜짝 한수] 정관장배 ● 박지은 9단 ○ 송용혜 5단

입력 2010-02-03 21:22


일기장에 지켜지지도 못할 계획들을 기록하며 새해 다짐을 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1월도 지나버렸다. 여전한 게으름과 흐트러진 마음에 바람을 쏘여주려고 잠시 나들이라도 다녀와야겠다 싶어 친구와 연필 뽑기로 목적지를 정하기로 했다.

방식은 연필 다섯 개를 들고 삼세번 뽑기로 했다. 부산! 세 번을 번갈아가며 뽑았는데 세 번 모두 부산이 나왔다. 불가항력적 힘으로 후다닥 배낭을 챙겨 새벽버스를 탔다. 얼마 만에 맞는 아침인지, 얼마 만에 보는 떠오르는 태양인지. 이 순간만으로도 떠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가 싸온 코코아를 마시고는 잠시 눈을 감고 새해 다짐을 재정비하고 있었는데 안내방송에 눈을 떠보니 벌써 부산 도착! 바다는 어둠 속에서도 출렁이고 있었고 밝음 속에서도 찰랑거렸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바람을 쐬니 겁 없이 의욕마저 차오른다. 아자!

서울로 올라와 하루 휴식을 취하고 한국기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관장 시합을 구경하러 갔다. 정관장배는 한·중·일에서 각각 다섯 명의 선수가 출전해 대국을 하는 대항전이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한명씩만 남아 있고 중국은 세 명의 선수가 남아 있어 가장 유리하다. 오늘 소개할 대국은 한국의 마지막 선수로 출전한 박지은 9단과 중국의 송용혜 5단의 대국. 남은 판을 모두 이겨야 우승할 수 있기 때문에 어깨가 무겁지만 그동안 꾸준히 트레이닝을 해왔고 승부에 강한 박지은 9단이기에 연승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 같다.

중국에서 벌어진 시합에 대륙의 기운을 받은 탓인지 초반부터 대범하고 시원시원하니 우선 보는 눈이 즐겁다. 실전1의 백1, 2 교환 후 백3으로 붙였다. 흑의 응수에 따라 타개를 하겠다는(흑이 젖혀오면 반대쪽으로 되젖히겠다는 의도) 좋은 수법이다. 보통이라면 백a-흑b-백c로 두는 것이 일반적인 타개법이지만 밋밋하다.

이에 삼십 여분의 장고를 한 뒤 두어진 실전2의 흑1. 하변의 백 한 점을 확실하게 제압하고 백에게 선택권을 넘겨주는 척하며 그에 따른 공격을 하자는 참음의 고급스런 수였다. 이에 백은 기세 상 2, 4로 하변을 뚫었는데 흑5로 붙여 백10의 악수 교환을 해줄 수밖에 없이 백말이 양분되어서는 흑의 페이스. 이 후에도 힘 있는 공격을 보여주며 흑이 승리했다. 오랜만에 박지은이 박지은다운 공격을 보여줬다. 기세가 오른 박지은은 파죽의 3연승을 거뒀다. 부디 연승해서 목마른 한국에게 우승을 안겨주길! 아자!

<프로 4단>